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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의 플러팅

by 초희



앞머리 몇 가닥을 잘랐다.

일명, 얼테기를 견디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한 셀프 컷.

어색한가 싶어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살피는데,

아이가 방까지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말했다.

평소 '엄마는 이모 같아!'라던 칭찬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단호하게.



“엄마! 정말 예뻐요! 언니 같아!”



확신에 찬 목소리인 걸 보니 진심이었다.

오랜만의 앞머리가 어색한 던 터라

‘괜찮은 건가?’ 싶었지만,

그 한마디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리고 우리 세 가족은 백화점 나들이에 나섰다.

어색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앞머리가 낯설었는지 남편은 왜 갑자기 머리를 잘랐냐고 물었고,

그 말이 엄마를 지적하는 듯 들렸는지,

아이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갑자기 외쳤다.



“언니! 수능 보러 간다며?!”



... 정적.

앞줄에 있던 아주머니가 힐끔,

뒷줄에 있던 남자분은 피식 웃은 것 같았다.

부끄러움도 길었지만,

그 순간이 남긴 웃음은 더 길었다.

그리고 그 순간 보여준 아이의 순수한 ‘플러팅’은,

내 자존감을 다시 한번 올려다 주었다.



누구에게 배운 것도 아닌데,

이렇게 진심을 담아 엄마를 웃게 만드는 능력이라니.





며칠 뒤,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놀이터에 있던 아이가 “엄마!!!!” 하고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엄마! 아까 나랑 놀던 언니가,

너네 엄마 서른 살 같아. 너무 예뻐.라고 했어!"라며

흥분한 아이는 숨도 안 쉬고 말을 쏟아냈다.



그래서 넌 뭐라고 대답했냐 했더니,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그래?’ 하고 넘겼지~”

라며 깔깔깔 소리를 내며 웃다.



기분이 좋아 빠르게 들어온 모습도 귀여운데

그 와중에 쿨한 척까지 했다니 정말 귀여웠다.



얼마 전엔 김밥집에 들러

김밥을 포장하는 나와 아이를 번갈아보던 사장님께서

“엄마 맞아? 새엄마 아니야? 이모 맞지?
엄마 아닌 것 같은데~”라며 너스레를 떠셨다.

그 말에 아이는 순간 움찔한 듯하더니,

곧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두 손을 공손히 내 앞에 모았다.
“아~ 네, 저희 엄마예요~”

그 작은 두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제 엄마'라며 자신 있게 말하던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든든하던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빠에게 시작된 엄마 자랑까지.



아이의 말과 기분 좋은 웃음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는다.

엄마 자존감 폭발시켜 주는 멘트와 행동은

내가 꽤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게 한다.



나는 진짜 관리 좀 해볼까 한다.

예쁜 내가 되고도 싶지만

내 아이가 나를 볼 때

오랜 시간 '우리 엄마, 진짜 멋져!'라고 생각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더욱 커졌다.



아이의 플러팅이 제대로 먹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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