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이성적인 사람이다.
회사 동생은 “언니, T 발언 좀 그만해요” 하고 웃고,
아이는 “엄마는 너무 대문자 T야”라며 씩씩댄다.
나는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그들에게는 또 센 말로 들렸나 보다.
그런 나도 이사를 코 앞에 둔 지금 이 집을 바라보면
마음 한 조각을 뚝 떼서 이 집에 남겨두고 가는 듯하다.
이 집을 떠나는 건 내게 단순한 이사만은 아니다.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스물두 살까지
엄마와 아빠, 동생과 함께 살아온 집.
돌아가신 엄마의 기억이 구석구석 배어 있는 집.
그래서 이별 앞에 떼어낸 마음 한 조각이 허전하고 발걸음은 무거워진다.
남편과 아이와 이 집에서 함께한 지난 6년은 미련이 없다.
우리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이야기니까.
새로운 집안에서 그려갈 미래가 있으니까.
그러나 이 집은 그 이전의 시간이 스며 있기에 떠나는 순간이 유독 아쉽다.
거실에 서면 새벽의 풍경이 떠오른다.
엄마도 우리도 병을 알지 못하던 시절,
나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며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던 엄마.
그 적막이 거실 바닥에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거실은 우리의 극장이기도 했다.
이불을 펴고 나란히 누워 드라마를 보던 밤들,
영화 올드보이의 뜻밖의 장면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던 기억.
그 시절의 추억이 여전히 이곳에 머물러 있다.
부엌에서는 늘 바쁜 엄마의 손길이 있었다.
싱크대와 붙은 작은 식탁에 네 식구가 둘러앉아 밥을 먹던 기억.
스물한 살, 첫 직장에 다니던 내게 도시락을 싸주던 아침.
지글지글 익어가던 계란야채 전의 냄새는 지금도 코끝에 남아있는 듯하다.
내 방은 엄마와 나의 수다방이었다.
작은 침대인지라 침대 위엔 내가 눕고,
침대 밑 방바닥엔 엄마가 누워 밤새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
엄마에게 밤새 떠들다 거기서 잘 거냐 하는 아빠의 외침이 들려오면
우린 더 작은 목소리로 속닥이며 웃곤 했다.
그리고 다리에 쥐가 자주 나서 새벽마다
"엄마!"하고 부르면 내 외침을 듣고
안방에서 내 방까지 뛰어와 종아리를 주물러주던 엄마의 그 발걸음의 울림마저 남아 애틋하게 기억된다.
때로는 다투기도 했다.
“너 같은 딸 낳아봐라!” 하며 얼굴을 붉히며 화내던 엄마의 목소리조차
지금은 그리운 추억으로 방 안에 맴돈다.
단연코 마지막 장면은 엄마를 이 집에서 마지막으로 본 순간이다.
그래서 더욱 선명한 기억.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홀쭉해진 얼굴과 앙상해진 몸으로
내게 세탁기 돌리는 법, 변기 뚫는 법을 알려주던 엄마.
그날 이후,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게 마지막이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한 채로
이 집은 그렇게 엄마의 마지막 흔적을 품은 공간이 되었다.
이제 이 집에는 새로운 주인이 들어온다.
가을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
곧 리모델링이 시작되면 벽과 바닥은 바뀌고, 모든 흔적은 사라질 것이다.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품은 집이 이제는 누군가의 시작을 담을 집으로 태어날 것이다.
깨부숴지고, 새로 칠해지고, 다른 사람의 웃음과 추억을 품어갈 집으로.
나는 며칠 뒤 이사를 간다.
이 집을 떠나는 섭섭함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남편과 아이와 함께 새로운 시간을 채워갈 집으로 향한다.
지금의 그리움이 완전히 덮이지는 않겠지만,
이 집에 남겨두고 가는 마음의 한 조각을
내 가족과 함께하는 추억으로 채워지기를,
나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