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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아이로 자랐고, 아이도 커서 어른이 돼”

by 초희


요즘은 ‘예스키즈존’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고가의 소품샵이나 카페에서는 ‘노키즈존’이라는 문구를 쉽게 마주한다.

아이와 함께 다니는 부모 입장이지만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한다.
나와 남편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니까 괜찮아”라는 핑계를 만든 적이 없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어리니까 괜찮아”라는 이유로

식당에서 뛰거나 놓인 물건을 함부로 만지도록 허락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도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우리 부부에겐

말하지 않아도 당연한 육아의 기준이었다.

그래서 노키즈존이 있다면 그곳은 그저 우리가 가지 않으면 되는 장소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과 함께 가려던 곳이 노키즈존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노키즈존의 기준은 몇 살까지 일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곁에서 듣던 아이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왜 우리 어린이들은 못 들어가게 하는 거야?
어른도 아이로 자랐고, 아이도 커서 어른이 돼!”

순간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남편은 “역시 우리 다똥이 세종대왕이네!”라며 귀여워했지만,
나는 웃음 뒤로 아이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 일이 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순간이 찾아왔다.



퇴근길, 시동을 막 걸었을 때 아이에게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줄넘기 학원에 가기 전, 속옷에 실수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상태로 수업까지 마치고 집에 와 뒤처리를 하면서

서러움이 북받쳤는지 울음을 터뜨린 모양이었다.



급히 집으로 달려가 “찝찝한데 왜 학원에 갔어? 그냥 집에 오지.” 하고 묻자,
그사이 담담해진 아이는 오히려 진지하게 말했다.

“학원은 빠지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엄마, 아빠도 회사에서 일하는 것처럼 나도 '내' 학원은 가야지.”

그 순간, 나는 울컥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는 단 한 번도 학원이나 학교에 가기 싫다 징징댄 적 없이 본인의 역할에 충실했다는 걸.

그렇기에 학원을 가기 싫다 옥신각신 한적도

'학원은 꼭 가야 하는 곳이야!'라고 가르친 적도 없었다.

당연한 듯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하고 있는 아이가 이제야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연차 등의 이유로 쉬는 날이면

아이도 학원을 빼주며 여유를 함께 나눠왔는데,
아이는 오히려 스스로 책임을 다하고 있었다는 것도 감사했다.





아직 아홉 살, 분명 어린아이인데
그 순간만큼은 나보다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아이가 찝찝함을 감당하며 수업을 받고 온 것이 안쓰러워 꼭 안아주며

혹시 이와 비슷한 일이 생기면 학교나 학원을 빠져도 된다고 가르쳐주었다.

안쓰러운 마음과 기특한 마음이 가득한 요즘이다.



나는 아이를 ‘아이라서’ 봐주며 키운 적이 없다.
빠른 성장을 지켜보면서 곧 내 품을 떠나 독립할 인격체로 대했고,
민폐를 만들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어느새 자기 몫의 책임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의 말처럼

어른도 언젠가 아이였고 아이도 언젠가 어른이 된다.

그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아이가 열심히 성장하고 있는 삶의 모습이었다.

나는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어른이라는 이름은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한 걸음씩 쌓아 올린 작은 선택과 경험, 책임으로부터
조금씩 천천히 완성되는 것이라고.



내 아이는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다.
울면서도 책임을 다하고,

씩씩대면서도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모습 속에서
나는 아이가 이미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걷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어른도 아이에게서 배우며,
오늘도 다시 자라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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