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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먹을 수 없는 엄마의 김밥

by 초희

어릴 적 우리 집 식탁은 늘 투박한 정성으로 가득했다.

엄마는 고추장과 된장을 직접 담가 먹었고, 족발조차 집에서 만들어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솜씨에 비해 맛은 늘 서툴렀다.

속재료가 정해진 김밥도 어딘가 모자랐고, 된장찌개는 물처럼 맑아 감칠 맛없는 싱거운 된장국이었다.

엄마는 요리를 못하는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요리 프로그램이 나오면 내가 안 쓰는 노트를 꺼내 빼곡히 레시피를 받아 적곤 했다. 노트 속 레시피는 완벽했지만 집밥 위에서 그 맛은 쉽사리 살아나지 않았다.

솜씨가 없어 집들이를 할 때면 출장뷔페를 부를 만큼 여유로웠지만 엄마는 절약정신이 투철하여 외식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고 다양한 음식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야근을 할 때면 야식으로 챙겨주는 김밥조차 본인이 먹지 않고 나와 내 동생을 먹이며 우리에겐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자 늘 노력했다.


엄마는 50살도 채우지 못하고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다.

나는 20대 초반 엄마를 잃고 집밥보다 식당음식을 먹을 일이 많아졌고 외식이 생활이 되었다.

그런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접하지 못했기에 그 맛을 구현하고 손맛을 내기 어려웠던 것이리라.

나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이제는 엄마에게 실컷 대접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맛있는 음식을 레시피 없이도 뚝딱 차릴 만큼 주부가 되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엄마의 투박한 밥상이 더 그리워진다.


주말 아침이면 나는 딸에게 김밥을 말아준다. 달걀지단과 햄, 시금치, 단무지를 가지런히 올리고 꽉 말아 접시에 담으면,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한 입 크게 베어 문다. 입안에서 고소함과 아삭한 채소 맛이 섞이며 퍼지는 순간, 나는 종종 엄마가 싸주던 김밥을 떠올린다.




단무지 대신 집김치를 넣어 축축하고, 옆구리가 터지는 김치 김밥을 싸주던 기억.

거실 바닥에 마주 보고 앉아 엄마가 김밥을 썰어내면 일반적인 김밥맛과는 사뭇 다르지만 나는 그 김밥이 짭조름하게 맛있어 열심히 비워 냈다. 그리고 수다를 떨며 웃고 떠들던 그 순간, 맛이 완벽하지 않아도 행복은 충분히 배어 있었다.


계란 전이라 부르던 노란 계란부침은 프라이도, 계란말이도 아닌 부추만 송송 썰려 올려진 어정쩡한 모양이었지만, 그 단순한 맛이 도시락반찬이 되었다. 애호박을 채 썰어 소금 넣어 볶아 내어 주면 밥과 섞여 든든한 한 끼가 되었다. 여름이면 달콤 새콤한 고추장 양념으로 비빈 김치비빔국수는 엄마가 내어주는 음식 중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던 최고의 별미였다.

서툴러도, 모두 둘러앉아 젓가락을 움직이며 웃던 식탁의 기억은 지금도 가장 맛있고 따뜻하다.


나는 이제 엄마에게 수많은 맛집을 함께 가자고 말할 수도, 내가 만든 다양한 음식을 대접할 수도 없다.

하지만 다시 먹을 수 없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투박한 밥상의 기억은 내 안에서 살아 숨 쉰다.

오늘도 나는 아이에게 김밥을 싸주며, 엄마가 남긴 사랑과 정성을 이어간다.

맛이 완벽하지 않아도 마음이 담긴 음식은 늘 온기를 남긴다는 것을 나는 매 순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온기가 내 아이와 내 마음 사이에서 또 다른 추억으로 쌓이는 순간

나는 비로소 엄마의 투박한 정성을 다시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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