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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않은 길에 남겨진 그리움

by 초희


결혼 11년 차가 되니 시댁이라는 공간은 꽤 편하다.

작게는 집안에 뭐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명절에 먹는 전은 어떤 크기와 두께로 굽는지 안다.

각 식구마다 개그코드를 알아 재밌게 대화하고 개개인의 성격을 모두 알고 있어 편하다.

불편이 최소화된 정도의 편안함.

그래도 친정이나 내 집처럼 완전히 편하지는 않은 게 시댁식구 같다.



편해진 만남도 시간이 길어지면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사이 속에서 어떤 상상이 나를 붙잡을 때가 있다.

‘엄마가 있었더라면…’하는 상상.

엄마가 떠난 지 15년이 지났기에 신혼 때처럼 간절하게 다가오는 그리움은 아니다.

그리움이 지나가고 마음 한편에 남는 궁금증이다.



이번 추석 연휴는 유난히 길었다.

우리 세 가족은 아이 생일을 기념해 대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바비큐장에서 불을 피우며 고기를 굽고 있는데, 대각선 자리의 한 신혼부부가 영상통화를 시작했다.

“어머님~” 하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남편 쪽 가족과의 통화였다.

여자분은 환하게 웃으며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통화가 끝난 뒤, 그 여자분의 친정 부모님이 바비큐장으로 내려왔다.
그 순간,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아빠, 이거 숙취해소제 먹어! 절대 씹지 말고 바로 삼켜!”
사회생활하듯 공손하던 말투 대신, 온몸으로 편안함을 드러내며 반말로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도 완전한 친정 식구를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지금 내 친정은 아빠와 남동생, 셋이 함께여도 충분히 편안하다.
그럼에도 엄마가 있었다면, 지금의 자리와 분위기, 말투와 웃음까지 모든 게 달라졌을 것 같다는 상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엄마였다면 내 아이를 어떻게 안아주고, 어떻게 놀아줬을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인데도, 상상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가보지 않은 길에 남겨진 그리움, 그건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이다.



이번 명절에는 남동생과 그의 여자친구도 함께했다.
내년이면 결혼할 두 사람을 바라보며 또 한 번 궁금해졌다.
엄마가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나는 조금 더 편했을까.

나는 지금 서른일곱 살,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키우는 엄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어른이 된 것 같지 않은 나’를 느낀다.
괜히 어른인 척 분위기를 맞춰야 할 때면,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나도 더 편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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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움과 상상을 이어가며 살아간다.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마음속 상상만으로도 위안이 될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리움 속에서 얻는 상상의 위안은 앞으로도 내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채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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