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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 아빠랑 노는 게 더 재밌어

by 초희


우리 집엔 ‘조가이버’가 산다.

내 성이 '조' 씨라서 붙은 별명인데,

'조' + '맥가이버'가 합쳐져 만들어진 이 말답게 집 안의 크고 작은 수리는 늘 내 몫이다.



남편은 뭐든 해보다가 잘 안 되면 금세 포기한다.

“아, 모르겠다. 그냥 사람 부르자!”

'...?'

대체 이런 간단한 일로 누굴 부르라는 걸까. 결국 그럴 때마다 내가 나선다.
그렇다 보니 우리 집에서 내 역할은 점점 굳어졌고, 남편은 점점 더 ‘똥손’이 되어버렸다.





지난주엔 정말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별것 아닌 일이었는데 남편은 그것마저 '똥손'짓을 해버렸다

언제나 그랬듯 내가 출동하여 수습했는데, 어쩐지 이 날은 짜증이 목 끝까지 차올라 눈물까지 날 뻔했다.

하지만 이내 웃음이 터져버린 건, 단순히 그 일을 망친 남편의 행동보다 어이없던 그의 반응이었다.

“나는 왜 이 모양이냐고! 하 진짜, 나 너무 싫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온갖 호들갑을 떨어대는 남편의 모습이 어쩐지 귀여웠다.
나는 결국 그 모습을 보고 깔깔 웃어버렸다.


그날 저녁 식탁에서도 그 이야기가 이어졌다.
“아, 이제 알겠어. 왜 여자들이 결혼하고 애 낳고 나면 남편이 애 같다 하는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이는 그 말을 이해 못 해 나를 바라봤다.

나조차 내 입으로 한 말이 옛 어르신들 같은 느낌이었는데, 아이는 오죽했을까.
그래서 나는 덧붙였다.
“이제 아빠는 43살이 아니라, 4학년 3반 오빠야.”

그 말을 들은 아이는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고, “오빠~!” 하며 남편을 놀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괜히 멋쩍게 받아주고, 나는 그 둘을 보며 또 웃음이 났다.
식탁 위엔 장난기 어린 '오빠, 오빠'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와 웃음이 가득했다.



잠시 후, 아이가 말했다.

“나는 게임보다 엄마 아빠랑 노는 게 더 재밌어.”



나는 어릴 때부터 기술자 아빠 밑에서 자라서인지 뭔가 고치고 만드는 걸 좋아한다.

안 되던 것들을 내가 수리해서 작동되면 그 쾌감이 크다.
남편은 똥손이다. 하지만 “나는 똥손이야!” 하며 인정하는 모습이 재미있다.

아이는 그런 우리를 보며 “엄마는 역시 조가이버야!”라며 박수를 치고 '엄마, 최고!'를 외친다.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했다.
고장 나면 고치는 나, 금세 포기하는 남편, 그리고 그런 우리를 보며 깔깔대는 아이.
우리만의 모습으로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이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그런데 그날, 아이의 한마디가 더욱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게임보다 엄마 아빠랑 노는 게 더 재밌어.”

평범한 일상이, 아이의 순수한 말로 인해 더욱 커지는 행복이 되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내가 만든 행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내가 가진 가장 큰 건강함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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