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안주 - 회
나와 남편은 술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에서 가까워졌다.
특히 ‘소주’.
하지만 의외로 남편은 안주 스펙트럼이 넓지 않았다.
나보다 여섯 살이 많으면서도 곱창, 양꼬치, 심지어 회까지 전부 나를 만나고서야 맛을 들였을 정도니까.
남편은 어릴 적 횟집에서 술자리가 있어도 회 대신 꽁치와 소주를 마셨다고 했다.
날생선의 물컹한 식감이 낯설고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어서 20대를 모두 그렇게 보냈다고 했다.
그래서 연애 시절에도 내가 횟집을 가자 하면 따라오긴 했지만, 정작 먹는 건 기본 안주뿐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그저 신기했다.
신혼 초, 남편은 이상할 만큼 우리 아빠를 좋아했다.
자주 먼저 연락을 하여 “아버님, 오늘 어떠세요?” 묻고 약속을 잡았다.
아빠는 나와 동생이 어릴 적부터 제철 회를 챙겨주곤 했으니 남편에게도 자연스럽게 횟집을 권했다.
“아빠, 오빠는 회 못 먹어!”
나는 남편이 억지로 회를 먹는 것 같아 방어해 보았지만, 남편은 괜찮다며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남편의 회 인생이 시작됐다.
그날부터 결혼 11년 차인 지금, 이제는 1, 2주에 한 번은 “횟집 갈까?” 말이 나온다.
무려 횟집에서 회를 추가 주문하기도 하고, 횟감만 보고 생선을 맞히기도 한다.
숙성회와 활어회의 차이까지 구별하며, 회 앞에서는 누구보다 들뜬 사람이 되었다.
회 맛을 알게 된 것뿐 아니라 남편은 아빠가 회를 먹는 스타일까지 따라 한다.
초장에 고추냉이를 섞는 비율부터 "이 회는 막장이지!" 하며 회를 찍어 먹는 법까지.
나와 단둘이 회를 먹을 때도 “아버님 스타일~”이라며 소스를 제조해 흉내 낸다.
은근한 기름이 퍼지는 숙성회의 깊은 맛에 한 잔,
바다 향이 살아 있는 활어회의 쫄깃함 식감에 또 한 잔.
탱글한 식감과 고소하게 퍼지는 감칠맛, 입안에 차오르는 신선함에 한 잔을 할 때면 서른이 되어서야 이 훌륭한 안주를 알게 된 게 아쉽다 말하는 남편.
아빠는 그런 남편을 보며 “내가 이서방, 회 가르쳤다”라며 웃는다.
아빠의 웃음에는 사위에게 회를 가르쳐주었다는 뿌듯함과 재미가 보인다.
남편은 '맛있는 회' 하면 우리 아빠를 떠올린다.
스물아홉까지 회 맛을 몰랐던 남편은 지금 ‘회러버’가 되었다.
이상하리만치 우리 아빠를 좋아하는 남편은 여전히 아빠랑 약속 잡으며 묻는다.
“아버님, 오늘은 회 어떠세요?”
하지만 인생에 반전은 늘 있는 법.
몇십 년을 회를 즐겼던 아빠가 이제는 회가 질렸다며 졸업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그럴 때면 남편은 과하게 서운해하는데, 그 모습이 꼭 스승에게 버림받은 제자 같아 나는 웃음이 난다.
오늘 이 글을 올리기 전에 남편에게 물었다.
“아빠가 이제 회 안 먹어주는데, 기분이 어때?”
남편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버님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실 거야.”
수십 년을 회를 먹어 질려버린 아빠가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남편의 굳은 믿음을 보니 우리 아빠가 그리 좋을까 싶어 신기하다.
회 대신 고기로 소주잔을 기울이는 아빠와 남편.
나에겐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보고 싶은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