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안주 - 김치만두
남편의 회식이 있는 날이면,
나는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종종 소주 한 잔을 곁들인다.
이사는 모두 끝났지만 새로 들여온 가구들이 채워지느라 이번 달은 지출이 많았다.
그래서 오늘은 냉동실 속 ‘오늘의 안주’를 꺼내 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만두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칼칼한 김치만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냥 만두라면 평범하고 느끼한 기분이지만,
칼칼한 김치만두라면
김치 없이는 살 수 없는 철저한 한식파인 나에게는
반찬을 넘어 소주까지 부르는 안주가 된다.
블로그를 하며 소소하게 협찬받은 만두,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를 찜기에 가지런히 올렸다.
아이는 매운 걸 먹지 못하니 밥반찬용 고기만두,
나는 소주 한 잔을 곁들여야 하니 칼칼한 김치만두.
왜인지 색깔까지 어우러져 저녁상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아마 소주 한 잔을 곁들일 생각에 나도 은근히 설레 있었던 모양이다.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향이 거실 가득 퍼졌다.
만두피는 얇고 부드러워 살짝 베어 물면 ‘쫀득’ 한 식감에
속에서 터져 나온 육즙이 입 안에서 살짝 퍼지며 따뜻하게 감싸준다.
칼칼한 김치향과 고기의 고소함이 뒤섞여,
자극적인 맛이 확실히 충족됐다.
고기만두는 아이 몫.
아이의 젓가락에 고기만두가 집혀 간장에 푹 찍힌 뒤,
한입에 들어가자 촉촉한 고기와 쫄깃한 당면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듯했다.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는 접시에 코를 박고 흡입하다
내가 빤히 보고 있는 걸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다.
“엄마, 내 만두도 먹어봐, 진짜 맛있어.”
아이의 입이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나는 흐뭇하게 웃는다.
나는 칼칼한 김치만두를 집었다.
만두피는 쫄깃하고,
속은 아삭한 배추김치와 고소한 돼지고기,
탱글탱글하게 잘라진 당면이 입 안에서 어우러진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김치의 매콤함이 입안 가득 혀끝을 자극하고,
속에서 흘러나오는 육즙이 따뜻하게 입안을 감싸며
소주와 만나 부드럽게 목을 타고 내려간다.
매콤한 김치만두와 달큼한 소주의 개운함이 겹쳐져,
마치 하루의 고단함이 입안에서 한 번에 씻어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쫄깃, 아삭, 탱글’이 동시에 느껴지는 만두는,
오늘 하루를 버텨낸 나에게 주는 소소한 선물 같다.
어릴 적, 엄마가 거실에 앉아 만두를 빚어주셨던 기억이 났다.
요리 실력이 전혀 없어 만두의 반이 터졌지만,
우리는 맛있는 집김치가 들어간 그 만두를 정말 좋아했다.
냉장고에서 차게 식은 만두를 정신없이 집어먹을 때마다
엄마는 “배탈 난다”며 화를 내셨지만,
나는 식은 김치만두가 더 칼칼하게 느껴져 오히려 즐겨 먹었다.
여전히 김치만두는 소소하게 나를 위로하는 음식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어릴 적 배탈이 날까 걱정하던 엄마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김치만두와 함께
굳이 굳이 소주를 곁들이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혼을 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회사에서 상사에게 어처구니없는 잡도리를 당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면
술 한 잔도 못하시던 엄마도
아마 나와 마주 앉아 함께 상사를 욕하며
소주를 따라주셨을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에 소주잔을 내려놓으며
크으, 하고 개운한 한숨을 쉬었다.
아이는 이런 내 모습을 보더니,
“엄마, 오늘도 부장님이 뭐라고 하셨어?
사직서 내라니까! 내가 대신 써줄까?!
종이에 내가 딱 사직서! 이렇게 써서 줄게!!!” 하고 화를 낸다.
"사직서라는 말은 어디서 들었어?"라고 물으니
"아빠가 엄마 회사 때문에 힘들 때마다 사직서 내라고 하잖아" 대답한다.
흥분한 그 모습이 정말 웃기고 귀여워 한참을 웃는데도
아이는 여전히 씩씩대며 내 편이 되어준다.
맛있는 닭발을 배달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소소하지만 칼칼한 김치만두와
나보다 더 흥분해 나 대신 화내주는 아이 덕분에
오늘의 이 저녁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
거창한 음식이 아니어도 좋아하는 음식과
내 편이 되어주는 가족과 속을 달래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오늘의 안주’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