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라는 낯선 여행
우연히 보게 된 드림웍스의 장편 애니메이션 '와일드 로봇'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었다. 이건 만화다라는 선입견 뒤에 편안히 숨어있던 나의 눈물샘은 허둥지둥 눈물 대방출을 하고 말았다. 순간 마음을 터치했던 스토리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누구나 안고 있는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궁금증.. 정체성.. 그리고 시간의 유한함.. 이런 것들 아닐까?
'우리가 사는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식은 성장하면 독립하여 부모의 품을 떠난다. 그리고 부모들은 은퇴하고 늙어간다. 그러면 남은 인생에 뭐가 더 남아 있는 것일까?
내가 그냥 살아가던 방식에 대한 의문..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새로운 프로그래밍이 필요하다.
유치원에서 대학원까지 공부했고 그리고 대기업을 30년 다니면서 이런 삶의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본 적은 없다. 인생 단계마다 주어진 숙제를 해치우며 그때마다 나만의 자아도취에 빠져 바빴으니까. 인생 후반기의 여러 문제를 생각해 보고 준비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은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퇴사하고 주변을 돌아보면 문명세계에서 갑자기 야생(Wild) 속으로 떨어진 주인공 로봇 '로즈'의 신세와 별 다름없음을 느끼게 된다.
나에게 어쩌다 심어져 있던 가치관, 생존 방법론.. 이런 획일화된 프로그래밍으로는 낯설고 와일드한 인생 후반기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다. 원래 인생 전반기 용도로 설계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후반기엔 폐기 대상이다. 그동안 주입된 프로그래밍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탐색해야 한다.
'그게 뭘까?'
아직은 탐색하고 '프로그래밍' 중이다. 내가 지향하는 삶은 남은 인생을 투자가처럼 살아보는 것이다. 교수에서 파이어족이 된 작가 최성락의 정의에 의하면 투자란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돈으로 크게 성공한 투자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투자자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면 끝까지 흥미로운 노후를 살아갈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려면 나의 시간과 돈 그리고 에너지를 어떻게 투입하여 미래를 만들어갈지 계속 고민하고 삶의 감각을 촉촉하게 세워야 한다.
투자를 위해 새로운 집으로 이사가 필요하면 힘닿는 데까지는 계속 무빙 할 것이다. 주식을 넘어 암호화폐까지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아 궁금증을 확장하고 테스트해 볼 것이다. 그런 낯선 호기심을 원료로 좌충우돌하면 신선한 시간의 매듭들이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단 망하지 않는 범위를 스스로 정하고 그 안에서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낯선 '은퇴 와일드' 생태계에서 내가 만들고 있는 프로그래밍이다. 이걸로 과연 인생 후반기에 생존할 수 있을까?
돌아보면 대단한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뭐든 재미가 있으면 오랫동안 꾸준히 할 수 있었다. 내가 행하면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이 에너지가 된다. 오래 할 수 있으면 그만큼은 이미 성공한 셈이다.
'내 머릿속 프로그래밍은 언제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든 걸까?'
아무튼.. 오래갈 수 있는 나만의 프로그래밍을 새로 짜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