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에 의연해 보기
지난 22일 일요일은 낮보다 밤의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절기상 추분이었다.
무덥고 질긴 여름도 아무튼 버티고 있다 보니.. 지나간다. 계절의 변화는 매일 보이지 않는다. 똑같아 보이는 그날, 그날들이 그냥 지나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다른 계절이 내 앞에 와 있곤 한다.
이렇게 미국 금리의 인하도 시작되었다. 이것 또한 언제 금리의 피벗 포인트가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지쳐 반쯤 포기 상태에 있었더니.. 어느 날 발표되었다.
'와우 드디어!'
그렇지만 당장 피부로 와닿는 변화는 없다. 천천히 스며들 것이다. 22년~23년 고금리 속에 혼란스러웠던 부동산 시장의 한 단면이 떠오른다.
당시 '전세 사기' 여파로 빌라나 오피스텔 등 아파트가 아닌 소위 '비아파트' 시장은 많이 추락했다. 너도 나도 이 시장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빌라 포비아'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그런데 비아파트 시장에서 큰 축이라 할 수 있는 오피스텔 시장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오늘 자 보도에 의하면 서울 오피스텔 매매 가격이 2년 만에 상승 전환했고, 거래량도 1~8월 전년 동기 대비 20% 늘었다. 강남 등 주요 도심지의 2룸 이상 오피스텔은 신고가를 다시 기록하고 있다.
'시장 환경은 변하고 맞추어 돈은 돌고 또 돈다.'
시장의 사이클과는 조금 다른 결도 있다. 계속 오르는 신축 분양가다. 성남시 구도심 재개발 아파트 분양가도 매번 오르고 있다. 막 청약이 시작된 성남 신흥역 해링턴 스퀘어의 전용 59제곱(25평) 아파트의 분양가는 9억 5천이다. 25평 아파트는 직장 초년생이나 신혼부부들이 가정을 꾸리기 위해 목표로 하는 대표적인 소형 아파트다.
'그게 이제 10억이 기본인 시대.. 이를 쫓아가야 할까?'
직장 4년 차인 아들은 성남시 1순위 주택청약통장을 벌써 갖고 있다. 그런데 당분간 어디 쓸데가 없다. 아니 쓸 수가 없다. 최소 4억은 모아 놓아야 10억짜리에 덤벼볼 수 있으니까.. 아직 멀고 멀었다.
마침 식사 후 아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아들, 요즘 아파트 분양가 참 비싸졌네.."
"뭔 새삼.. 앞으로 청약통장 의미가 있을까요?"
"글쎄.. 우선 목돈부터 좀 만들어 보고.."
"근데 아버지가 추천했던 지방 분양권으로 그런 게 가능할까요? 요즘 그건 어때요?"
"허.. 아직 마이너스 p다. 그때 괜한 짓 했을까.."
"에이, 그때는 시간 투자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계절의 변화는 늘 무심히 갈 길을 찾아간다. 부동산 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가격과 가치에 대한 사람의 판단이 시기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한다.
2년 전 싸게 매수했던 지방 분양권은 오히려 가격 경쟁력을 조금씩 만들고 있다. 한동안 버림받을 거 같던 도심 속 2룸 오피스텔도 다시 꿈틀거린다. 지난 고금리 여파와 높아진 공사비 영향으로 공급량이 줄고 가격은 비싸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적인 투자 여부는 선점하고 그저 기다리고 버틸 수 있느냐의 문제일 수 있다. 이게 그리 복잡한 계산은 아닌 셈이다.
실제로 물량 공급을 걱정하던 지방의 한 분양권은 타 단지의 입주 물량이 끝나면서 어느덧 그 지역 마지막 입주 아파트가 되어 버렸다. 공사비 급등으로 인한 신규 착공 지연으로 향후 최소 4년간은 아파트 추가 공급이 없는 지역이 되었다.
상황이 조금 나아졌지만 내가 뭔가를 한 것은 없다. 마이너스 p로 매도를 하고 싶던 충동을 그냥 참으며 답답하게 있었을 뿐이다.
'뭔가 빨리 결론을 내려는 조바심은 경계해야 한다.'
아리 크루글란스키가 쓴 '불확실한 걸 못 견디는 사람들'에 나오는 글이 생각난다.
"불확실함이 주는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삶이란 확정되지 않은 것에 의연한 삶이다."
계절이란 때가 되면 바뀐다. 확정되지 않은 것이다. 해당 계절의 날씨에 너무 몰두하면 안 된다. 바뀔 거니까.
그래서 뭔가를 빨리 결론내야 한다는 '종결 욕구'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더 단단한 투자 기회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희망을 다독거리며 센티해지는 가을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