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을 보다
옛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장소는 서울 명동 한복판이다.
명동 시내에서 약속이라.. 좀 촌스러운가?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을 다닐 때까지 서울에서 쭉 자랐다. 그런데 명동 한가운데 점심 약속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변으로 버스나 전철로 지나가 본 적은 여러 번 있지만 마음먹고 명동 안쪽으로 걸어가 보기는 몇십 년 만의 일이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명동성당은 이전의 기억과 참 다르다. 원래 항상 거기에 서 있던 곳이지만.. 오늘 찾아가 보기 전 마지막 조우는 대학교 2학년때인 1987년 6월 뿌연 최루탄 속에서였다.
이 앞을 도망가다(?) 얼핏 쳐다본 적이 있다. 명동 성당이었다.
'나를 숨겨줄 공간이 있나?'
당시 충무로 골목길로 몇 명의 친구들과 살기 위해 달렸다. 나답지 않게 뭔가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뛰쳐나갔지만 잡힐까 봐 두려웠다. 가슴속 심장은 내내 요동쳤다. 당시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전경들을 피해 숙대입구역까지 걸어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곤 내 방에서 혼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오늘 올려다본 명동 성당은 그동안 머릿속의 그때 이미지와 달랐다. 한국의 파란만장 정치 역사를 꿋꿋이 지켜보고 있는 파수꾼이자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는 랜드마크이고 핫 플레이스였다.
나는 스페인의 가우디가 설계한 성당을 포함하여 유럽의 유명하다는 성당을 많이 방문했다. 근데 정작 한국의 명동성당을 둘러보고 그 안까지 들어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잘 모르는 외국 성당에 들어갔을 때보다 여기가 왜 더 찡하지..'
지난날 청춘의 고민과 눈물.. 당시 넘치던 자의식과 숨이 끊어질 듯 흘리던 식은땀이 추억 속에서 뒤범벅이 되어 지나간다. 나름 그때도 후회 없이 열심히 살려했던 거 같다.
성당 건너편 카페에서 바라보는 명동성당과 남산의 모습이 익숙한 듯 새롭다.
'원래 여기가 이렇게 글로벌한 풍광이었나?'
아무튼 제법 멋지고 편안한 풍경이다.
'근데 이 느낌, 비싼 땅이라 그럴까?'
이 일대의 땅값은 공시지가 기준 대한민국 최고 수준이다. 명동은 2004년 이후 국내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유지하고 있다. 제일 비싼 곳이 평당 6억이다.
공시지가 기준 2018년 평당 3억에서 두 배가 되었다. 지금부터 30년 전인 1996년에는 이 일대 땅값이 평당 8천만 원대였으니 어마어마한 상승이 진행 중이다.
'왜 그럴까?'
도심 속의 한정된 땅이라는 희소성 그리고 인플레이션 때문이다. 그동안 돈의 가치는 계속 떨어져서 땅에 녹아있다. 앞으로 저성장 속에서도 돈의 가치는 계속 떨어진다.
신동국이 쓴 '반은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지나간 30년보다 앞으로 30년 인플레이션이 더 작아질 이유는 없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 속에 있어도 정부 부채 확대와 신용 창출 증대로 유동성 공급은 계속되고 이는 자산의 양극화와 화폐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앞으로 30년 후에는 이 일대 땅값이 얼마까지 올라가게 될까? 아파트 시장의 양극화는 어떤 모습을 만들게 될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중세시대에서 날아와 서 있는 듯한 성당의 모습과 이를 내려다보는 남산 타워 풍경은 나의 번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평온할 뿐이다. 오래된 모습이지만 역동적이다. 내 인생도 이렇게 숙성시켜 가면 좋겠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낯설고 아름다운 서울을 바라본 어느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