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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롭 Dec 31. 2022

엄마, 당신이 시예요

첫 연을 읽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시가 될 첫 음절, 첫 단어를/ 당신에게서 배웠다”로 시작하는 시 <어머니>(류시화,『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를 읽어 내려 갈 때, 내 안에 바람 하나가 일어나고 있었다. 당신을 시로 옮기고 싶다. 


<어머니>를 읽고 생겨난 바람은 여태 묻혀 있고. 얼마 전 늦가을 다시 찾은 주산지에서 엄마와 찍은 사진을 본다. 중학교 3학년 한여름에 가본 청송 주산지. 그때 어떻게 그곳에 갔을까? 기억나지 않았다. 궁금해 하자, 엄마가 말했다. 신문에 실린 주산지 사진을 보이며 내가 가고 싶어 했다고.  


지난날을 추억하며 청송으로 가는 동안 우리는 주산지 가을 얼굴을 기대했는데, 밑동이 물속에 잠긴 왕버들은 잎이 다 져서 뒤틀린 우듬지까지 드러나고, 물이 줄어 주산지는 작아져 있었다. 너무 늦게 왔네. 나는 말했고. 엄마는 물고기들이 노니는 걸 신기하게 구경하다가 여름에 또 오자 답했다.


잎 하나 없는 왕버들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니 그날이 펼쳐진다. 사진 속에서 나는 웃고 엄마는 미소 짓고 있다. 우리 얼굴이 수십 년 만에 찾아간 주산지처럼 낯설다. 나직이 불러본다. 엄마… 멀리서 당신은 무엇인가 하다 그 순간 불현듯 내가 생각났을지 모른다.


엄마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다. 오래전 일들이 떠오른다. 내가 쓴 글이라면 엄마는 논문마저 애독했지. 논문을 처음 게재하고서 학회지를 가져다주었는데, 그 후 시골집에 갔을 때 내 논문을 열 번 읽었다고 했다. 전공자들이 보는 논문을 반복해서 읽은 마음을 뒤늦게 헤아린다. 


그러다 편지를 기다리고 기다렸을 마음에 가닿고. 맞아, 편지! 필요할 것 같아 화장품인가를 사서 간 날, 내게 편지를 받았을 때가 제일 좋았다고 한 말이 기억난다. 긴 기다림 끝에 한 말을 듣고도 편지를 쓰지 않았구나. 무엇에 골몰하느라 끝없이 주기만 하는 엄마에게 편지 한 장 보내지 않았는지. 그동안 부친 편지는 단 한 번. 


어버이날을 앞두고 무악재 옥탑방에 아카시아 향기가 진동할 때 편지를 썼지. 엄마는 내 편지의 향기가 너무 좋아 읽고 또 읽고 수없이 읽었다고 했다. 편지를 자주 받고 싶다는 말이었는데. 엄마가 한 말이 재생되면서 의미를 새로 깨닫고. 당신을 부르다 편지를 쓴다. 사과할 줄도, 감사할 줄도, 사랑을 표현할 줄도 모르는 딸이 이제야.     



엄마. 볶은 깨 냄새가 솔솔 난다. 중학생이던 날 아침, 부엌에서 도시락을 준비하다가 나를 깨우러 와서 안아줄 때 엄마한테서 나던 고소한 냄새. 어느새 엄마가 와 있네. 편지를 쓰는 내 곁에. 엄마 냄새로. 


있잖아,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라고 맺은 쪽지. 기억나?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꺼낼 때면 곱게 접은 쪽지가 눈에 번쩍 보이곤 했어. 쪽지를 읽고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도시락 뚜껑을 열면 반찬 위에 깨가 뿌려져 있었고. 흩뿌린 깨로 표현한 마음과 사랑의 쪽지가 있는 엄마의 도시락을 나는 잊지 못하지. 


반 친구들은 아빠 없는 나를 동정하는 눈으로 보았지만, 그 시선을 충격으로 느낄 만큼 엄마의 사랑이 있었지. 엄마는 함께 걸을 때면 늘 손을 잡았잖아. 시장 골목을 걸을 때도. 손을 잡고 장을 보다가 이따금 손에 힘을 주던 손. 편지를 쓰다 말고 엄마가 꼭 잡은 손을 어루만져 본다. 엄마 목소리가 들리네.  


내게 말했지. 새끼손가락이 유난히 짧은 엄마 손을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다듬은 손톱에 반지가 잘 어울리는 엄마 손을 나는 만지작거리며 농사일하는 손 같지 않다 말했고. 엄마가 손을 자동차 핸들에 올리고 있을 때 근사했어. 나를 차에 태워 교문까지 데려다 주는 날이면 우리 반 아이 누가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자랑하고 싶었어. 멋진 엄마를. 


그런데 나는 무서웠어. 엄마도 아빠처럼 자다가 심장이 멎어 버릴까봐. 몰랐지? 농사일로 피로한 엄마가 일찍 잠들면 심장이 잘 뛰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어보곤 했어. 심장 뛰는 소리를 손으로 들으면서 안도했고. 얹은 손을 가슴에 그대로 둔 채 잠들었지. 밤새 내 손이 심장을 보호해준다는 듯이.  


기척이 나서 게슴츠레 눈을 뜨면 언제나 절하는 엄마 등이 보였어. 남편을 잃고 시부모와 어린 자식을 건사하는 등. 백팔배하는 등을 볼 때면 엄마의 사랑에, 삶의 의지에 눈물이 나더라. “죽은 사람이 불쌍하지요.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조문하러 온 사람들이 뭐라고 위로했는지 몰라도 엄마가 한 그 말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지. 불쌍한 이는 당신이 아니라 죽은 남편이라는 말을. 


그때 엄마 나이 마흔. 나는 혼자 살아도 눈물 나는 날이 많은데, 지금의 나보다 적은 나이에 식구가 다섯이나 딸린 엄마는 벼락처럼 닥친 일을, 느닷없이 지워진 삶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나는 짐작도 못하지. 위로가 되어 주지 못하고 고통을 더 얹어 주었으니. 아빠가 죽고 어느 날부터 내가 이상해졌잖아. 머리는 무겁고, 가슴은 답답하고, 날마다 몇 시간씩 울어야 했으니까. 


불가해한 나날을 보내며 입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입 시험을 치른 다음날. 학교에서 답을 맞춰보는데 평소 많이 틀리던 국어에서 하나도 틀리지 않은 거야.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집에 돌아와 내 방문을 열자, 엄마가 앉아 있었어. 겨울 햇살이 비쳐 드는 환한 창 아래서 마늘을 까고 있었어. 엄마가 내 방에 있는 게 어리둥절한 와중에 따사로운 기운이 나를 휘감았지. 내 방에서 느낀 적 없는. 엄마는 그때도 나를 위해 염원했을 거야. 


시험장으로 나를 들여보내고 절에서 기도한 걸 알게 되었어. 그러니 경이로운 시험 결과는 엄마가 올린 기도의 힘이었지. 공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공부하는 길로 나아갔는지. 내 생이 엄마의 기도로 이어졌다는 걸 새삼 깨달아. 기도하는 몸짓을 하지 않아도 엄마 삶의 태도는 기도 같아. 어디든 엄마가 있으면 환한 빛 속의 포근한 방이 되지. 언제까지고 그 빛과 온기 속에 머물고 싶은 마음. 아는지?


뿌리 내린 땅이 저수지로 바뀌는 바람에 왕버들은 줄기까지 물에 잠겼으나 수백 년이 지나도록 의연하게 서 있지. 주산지 왕버들처럼 엄마가 있어서. 간절한 기도 같은 엄마의 삶 덕분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주산지를 감상하듯 지난날을 돌아보며 감사하네.


사는 동안 종종 엄마를 닮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어. 딸이지만 엄마랑 성격도 성향도 너무 다른 내가 마음에 안 들었어. 유쾌하고 너그럽고 누구든 존중하고 누구와도 친구가 되는 엄마. 주위로는 좋은 사람들이 절로 모여들었고. 법당에서 들은 법문을 그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 엄마가 법사님을 집에 초청하면 사람들이 거실 가득한 우리집은 그때마다 절이 되었지.


엄마는 인기도 많고 내가 보기에 못하는 것도 없었지. 참, 다음 생에는 가무를 잘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지? 사람들이랑 노래방에 다녀와서 한 말이 떠올라 별안간 웃네. 미안. 그 마음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아. 때로 그렇게 느끼니까. 하지만 난 무엇보다 글을 잘 쓰고 싶어. 글은 엄마가 잘 쓰잖아. 그래서 아빠도 편지 쓰기를 엄마에게 미루었고. 내가 남학생에게 보내는 편지도 엄마가 대신 써주었는걸. 여고생이 되어 남고생과 반끼리 펜팔 했을 때 말이야. 


서두를 써주면서 이어 쓰라고 했지. 하지만 한 줄도 쓸 수 없었어. 엄마가 써준 그대로 남학생에게 보내었어. 편지가 오가면서 답장을 받고 환호하는 아이는 줄었지만 나는 받았지. 엄마한테 답장을 또 써달라고 하기 부끄러워 남학생 편지를 친구에게 넘겨주고 말았어. 그때 엄마처럼 글을 잘 쓰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어.      


알다시피, 내가 엄마 존경하잖아. 그럼에도 우리 사이가 평화롭지만은 않았지. 불화한 날도 많았으니까. 내가 시골집에 간 지 하루 만에 짐을 사서 길을 나선 날 있었지. 뒤돌아보면서. 어린 날 엄마가 안고 달래주기를 기다리며 대문 밖에 나가 울던 아이처럼.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을 때, 나를 부르던 목소리. 메아리친다. 지금 여기까지. 


존경하면서 불화하다니! 왜 그래야 했을까. 우리 사이에 한 사람이 있었어. 남의 것과 자기 것을 구분하지 않고, 허언을 퍼트리며 불만을 해소한 이. 초연한 엄마는 그이에게 계속 일을 맡겼고. 결국 그이가 나를 모함했을 때 도무지 참아낼 길이 없어 소설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어. 글쓰기를 가장 두려워한 내가. 소설을 쓸 줄도 모르면서. 그녀를 주인공으로. 


“우리들의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소설가 김영하가 쓴『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저 문장을 읽고 나서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었어. 소설을 쓸 만한 능력이 없더라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어. 내가 소설을 쓰는 목적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용기가 나더라. 쓰다가 알았어. 내가 어떤 인간인지. 


고단한 삶에 나같이 과민한 딸을 두어 엄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나 때문에 혼자 마음을 앓던 엄마가 화해하고 싶어 전화해 가슴을 그렇게 아프게 하고 가느냐고 말했을 때는 사과가 절실한 순간이었는데. 뉘우치는 본심과 달리 퉁명스럽게 대꾸했으니 서글픈 마음을 어떻게 삭였을까. 그 일뿐만이 아니었지. 


소설 아닌 소설을 쓰다가 많이 울었어. 그리고 떠올랐어. 엄마의 노트. 나처럼 엄마도 꿈꾸었지. 그렇지 않아? 오래전 우리 안방에 다락방이 있었잖아.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있어도 어둑하고 낮은 천장 때문에 아늑했던 다락방. 안방 속에 숨겨져 비밀스럽기까지 한 방말이야.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으로 그곳에 올라가 놀곤 했어.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어 보물찾기를 하는 듯했지. 


하루는 두꺼운 노트를 발견했어. 글자들이 빼곡한 노트. 엄마 글씨였지. 그게 뭔지 궁금한 내 물음에 소설을 필사한 것이라고 엄마가 말했는데. 어린 나는 더이상 질문을 이어가지 않았고. 글 쓰는 삶을 열망하는 지금에야 엄마 마음을 헤아려봐. 엄마는 작가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소설을 필사한 게 아닐까 하고.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지난여름 밀양 얼음골에 가서 가지산에 올랐을 때, 하늘사랑길을 걸으며 팻말에 적힌 시를 읽고 걸음을 옮겨 또 시를 읽던 엄마. 이렇게 써도 시가 되는구나, 엄마가 말하고. 그러니까 엄마도 써봐, 내가 말했지. 나도 쓰지 못하면서. 경주 황성공원을 산책할 때 엄마는 여러 시비가 세워진 곳에 발길을 멈추었어. 쌍둥이 조카와 나는 풀이 자라는 그곳의 모기 때문에 그만 가고 싶어 하는데도 엄마는 시를 다 읽고 싶어 했어. 좋은 시가 많네, 하면서. 함께 나들이를 하며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어. 


젊은 날 소설을 필사할 만큼 글쓰기에 열정과 열망이 있었으나 엄마가 처한 현실 때문에, 자식을 지지하느라 엄마의 꿈을 다락방에 올려 둔 건 아닌지. 다락방을 없애면서 엄마의 꿈마저 없애 버린 건 아닌지. 내가 석사논문을 쓰다가 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다고 진학할 뜻을 내비쳤을 때 선뜻 말했잖아. “내가 밀어줄게.” 그리고 “꿈을 크게 꿔라.” 


엄마는 아빠가 남긴 영농일지를 참고하면서 친환경농법으로 과수원을 경영했고, 영농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니며, 유럽을 서너 번이나 다녀올 정도로 적극적이었지. 하는 일에서 꿈꾸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동경하는 길의 정점에 있는 인물 사진을 벽에 붙여나갔어. 가슴이 가리킨 방향은 내가 가던 쪽이 아니었지. 그런데 이제야 가슴을 따라 발걸음을 떼네.


지금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 내 안의 빛을 인정하면서. 빛은 늘 반짝이고 있었는데도 몰랐지 뭐야. 마음에 드리운 어둠에 덮여 있었으니까. 잡동사니에 뒤섞여 있던 엄마의 노트처럼. 이제라도 발현하니 다행이야. 글을 쓰고 있을 때가 좋아. 글 쓰는 삶으로 향하는 마음은 엄마에게서 이어진 건지 모르겠다. 


나를 발견하면서 엄마를 재발견했어. 허공을 가르는 가지와 땅속에 뻗은 뿌리는 하나이므로. 어제『위로의 미술관』을 읽는데 엄마 생각이 나더라. 바람도 따라서 일어나고. 엄마가 당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좋겠다는 바람. 75세에 손자 손녀가 사용한 붓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시골 할머니가 있었어. 101세까지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애나 메리 로버트슨.      


“그녀의 가족은 애나가 만든 잼과 그림을 마을 바자회나 장터에 선보였지만, 잼은 상을 받아도 그림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애나는 화가로 돈을 벌거나 성공하려는 욕심을 갖지 않았다. 자신이 경험한 다정하고 따뜻한 고향의 모습을 그림으로 담는 일,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진병관,『위로의 미술관』(빅피시, 2022)에서     


애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난다 해도 놀랍지? 하지만 끝이 아니야. “89세에 회고전이 열린 것은 물론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이에게 수여되는 공로상을 수상했으며, 그녀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가 아카데미상 후보에까지 오른다. 또 아흔이 넘는 나이에 <타임>지의 표지 모델이 됐고.” 


꿈꾸는 자에게 나이는 정말 상관없다. 그치? 한때 간직한 꿈을 실현하는 엄마를 상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네. 어때? 엄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엄마를 읽는 시간을 마음대로 그려보는 까닭은 엄마가 늙지 않았으면 해서. 제임스 설터의 산문『소설을 쓰고 싶다면』에서 밑줄 그은 문장을 들려주고 싶어. “우리가 글로 쓴 것들은 우리와 함께 늙어가지 않습니다.” 


편지를 쓰지 않은 세월만큼 편지가 길어진다. 길어서 엄마가 읽기 힘들까봐 줄이다 더 줄이지 못하고. 편지를 내가 읽는다. 늙지 않을 엄마가 여기 보일락 말락 하네. 혼잣말을 하다가 이런 문장을 쓴다. 마음과 글이 온전히 포개지도록 쓸 수 있다면. 그리하여 편지가 거울처럼 당신을 비춘다면. 그때 당신은 반할지 모른다. 당신에게. 그러니 나는 쓰고 써야지. 사랑하는 엄마에게. 그사이 편지는 시가 될까. 엄마, 당신이 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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