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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Oct 14. 2022

고구마와 에어프라이어의 상관관계

텃밭산 고구마 말랭이 파티

짧지 않았던 고구마와의 여정


올해 여름, 고구마를 텃밭에 심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구마 줄기인, 고구마 순을 심었습니다. 평소 고구마 수요가 많은 저희 집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넉넉히 심었던 그 고구마가 어느덧 수확철을 맞이했습니다. 비교적 늦게 심은 만큼, 저희는 비교적 늦게 수확을 했는데요. 따사로운 여름인 지난 6월에 심고, 쌀쌀한 10월 초에 수확을 했습니다. 


올해 고구마 줄기로 김치도 여러 번 해 먹었을 만큼, 저희 텃밭 고구마는 흙 윗부분인 고구마 줄기가 굉장히 풍년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위로 잘 자랐다는 건 그만큼 영양분이 뿌리 부분인 고구마로 잘 가지 못했다는 뜻이더군요. 그래서 안타깝지만 올해 고구마 수확량은 얼마 안 될 거라고 예상하며, 큰 기대 없이 고구마 수확에 임했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대략 4개월 동안 땅속에 묻혀있던 고구마의 수확은 예상외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고구마 줄기가 풍년인 텃밭



고구마 수확


이번 고구마 수확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가 있습니다. 저는 고구마 캐는데 재능이 전혀 없습니다. 텃밭에서 매번 맞닥뜨리는 당황스러움이지만, 텃밭에서는 뭐 하나 쉬운 게 없습니다. 만만하게 생각했던 고구마 캐기도 그중에 하나지요. 눈 깜짝할 사이 제 호미질에 수많은 고구마가 잘려나가는 게 아니겠어요? 처음에는 내가 경험이 없으니 그럴 수 있지라고 웃어넘겼지만, 계속 잘려나가는 고구마의 병원행에 점점 속상해지더군요. 4개월 동안 힘들게 키웠는데, 마지막에 수확을 잘못해서 고구마 농사를 망치나 싶었던 순간입니다.


그때 농사 경험치 높은 엄마께서 팁을 하나 던져주셨습니다. 밭 옆에서 단면을 보면서 캐면 고구마를 덜 상하게 캘 수 있다더군요. 그래서 그때부터 옆 단면을 보며 흙을 파고, 고구마가 나오면 다치지 않게 아기 다루듯이 캐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주에 걸친 수확을 하고 나니, 어렵던 고구마 캐기도 손에 점점 익어갔습니다.


호미질에 잘려나간 고구마와 텃밭 옆 단면에서 본 고구마


그렇게 수확한 고구마는 2박스 반 정도가 나왔습니다. 간간이 크고 긴 고구마가 나올 때는 기쁨 이상의 희열이 느껴지더군요.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고구마를 캤습니다. 비록 초보 농사꾼의 서툰 손놀림에, 여기저기 상처 나고 잘려나간 고구마가 거의 반이었지만 괜찮습니다. 못생긴 건 저희 집에서 요리해서 먹고, 예쁜 건 지인들과 나누면 됩니다. 




텃밭산 고구마 말랭이 파티


고구마를 지인들과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눠도 저희 집 몫은 충분하더군요. 그동안 농사짓느라 함께 고생해 주신 부모님께 한 박스를 붙여드렸는데도 충분히 남았습니다. 고구마도 너무 오래 그냥 두면 맛이 없어지거나 상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 고구마들을 어떻게 보관해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먹고 남은 고구마의 절반 정도는 찜 솥에 푹 쪄서 냉동실에 넣었습니다. 먹고 싶을 때마다 꺼내서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먹으면 여전히 맛있고 뜨거운 고구마를 후후 불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죠. 


또 다른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던 중, 에어프라이어로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 수 있다는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먹이기에 좋은 방법이다 싶더군요. 그렇게 만들기 시작한 고구마 말랭이는 요즘 저희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제간식이 되었습니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고구마를 평소처럼 맛있게 찌고 식힌 후, 손가락 두께로 도톰하게 자릅니다. 그리고 에어프라이어에 두 번에 걸쳐서 구워주면 됩니다. 첫 번째에는 120도에 20분을 돌리고, 두 번째에는 고구마를 뒤집어 준 후 120도에서 20분 동안 한 번 더 구워줍니다. 제가 찾아본 글에서는 180도에 30분을 구우라는 내용도 있어 시도해 봤지만, 저희 집 에어프라이어와 고구마에는 과한 지 고구마들이 많이 타거나 수분을 너무 잃어 맛이 없었습니다. 고구마 종류와 에어프라이어 기기 종류에 따라서 적당한 온도와 시간을 알아가면서 만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더군요. 


텃밭에서 캔 고구마로 만들어보는 고구마 말랭이


에어프라이어에 갓 구워낸 고구마는 생김새만 보면 맛있는 감자튀김 같기도 합니다. 확실히 굽고 나면 선명한 노란빛을 띠면서 맛있게 보입니다. 뜨거운 열기를 식혀내고 밀폐용기에 넣어서 냉장 보관을 하면, 바삭함 대신에 말랑말랑한 식감의 고구마 말랭이가 됩니다. 


'그냥 찐 고구마를 주고, 손이 더 가는 고구마 말랭이는 하지 말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간식으로 주고 보니, 고구마 말랭이의 장점이 몇 가지 눈에 띄더군요. 일단 찐 고구마보다 고구마 말랭이는 수분이 적어 더욱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훨씬 잘 먹죠. 그리고 찐 고구마처럼 껍질을 매번 까줄 필요도 없습니다. 수분이 적어 아이들이 손에 쥐고 먹어도 손에 많이 묻어나지 않습니다. 시간을 좀 할애해서 만들어두면, 두고두고 며칠 동안 편리하게 아이들의 간식을 챙겨줄 수 있게 되어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에어프라이어로 만든 고구마 말랭이


농사지은 고구마 줄기로 난생처음 김치 담그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직접 심고 기르고 수확한 고구마를 이용해서 아이들에게 수제간식을 만들어 줄 수 있게 되었고요. 요리조리 생각해봐도, 고구마 농사짓기 참 잘했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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