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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Nov 12. 2022

실례지만, 이웃 자랑 좀 하고 갈게요

텃밭 시금치나물 무침과 도토리묵 무침

때로는 남편보다 이웃


밭을 돌보러 나가려고 차에 타 시동을 걸려는 참에 앞 동에 사는 친한 이웃이 전화를 주시더군요. 


"여보세요?"

"세온이 엄마, 나가는 길이세요? 아직 출발 안 하셨죠? 지하주차장이시면 잠깐 기다려주세요!"


아이들이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맺어진 인연입니다. 같이 장도 보러 가고 주기적으로 공동육아도 하며, 지금은 애들보다 엄마들이 더 친해질 정도로 자주 교류하며 지내죠. 이날도 집 앞 5일장에 같아 가려다가, 날짜를 착각한 제 해프닝으로 그냥 지나가는 듯했습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하며 잠시 주차장에서 이웃을 기다렸죠. 버선발까지는 아니지만, 저를 만나기 위해서 급하게 내려온 이웃의 손에는 빼빼로 두 봉지가 들려있었습니다. 


"어머! 오늘 설마 빼빼로 데이...?"


네. 저는 남편도 안 챙겨주는 빼빼로 데이를 아침부터 부랴부랴 뛰어나와 챙겨주는 이웃이 있습니다. 빼빼로 데이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념일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냥 지나쳐가기 쉬운 이런 사소한 것도 먼저 두 팔 걷어붙여가며 챙겨주는 이웃이 있어, 저는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빼빼로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같은 동에 사는 다른 이웃한테도 받은 선물이 있습니다. 배도라지 달인 물과, 약 도라지, 그리고 대추입니다. 사실 저는 이번 주부터 배와 도라지를 시장에서 사 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배도라지 달이고 있습니다. 워낙 아이들이 감기에 자주 노출이 되자 면역력을 좀 높여주고자 시작했죠. 제가 달이는 배도라지 냄새가 이웃집까지 흘려간 걸까요? 때마침 어떻게 알았는지, 필요한 약 도라지와 대추를 이웃으로부터 선물 받았습니다. 기막힌 타이밍에 받은 선물이라 기쁨은 배가 되더군요.


정성 가득 담긴 배도라지 달인 물



텃밭으로 되갚는 정


저는 'Give and Take'를 모토로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저는 반대로 'Take, then Give'로 움직인다고나 할까요? 무언가를 받게 되면 거기서 멈추기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작게나마 보답을 할 때 큰 기쁨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텃밭에서 수확한 농산물로 주위 이웃과 종종 나누고 있습니다. 약 도라지와 대추를 선물해준 집에 그동안 신세 진 게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오늘 텃밭에서 수확한 시금치, 적상추, 그리고 양상추로 반찬을 해서 나누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시금치나물 무침을 하기 위해서 시금치를 일부 수확했습니다. 시중에서 사 먹던 시금치는 큰 크기를 자랑했지만, 저희 시금치는 그에 비하면 시금치 맞나 싶을 정도로 작고 귀여운 크기였습니다. 아직 수확하기에 너무 이른 거 아닌가라는 염려도 되었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작은 시금치가 더 부드럽고 맛있다는 글을 보았죠. 그 글로 잠시나마 마음의 위로를 받으며 수확을 했습니다.


작지만 부드러운 시금치


그리고 적상추와 양상추도 큰 잎을 위주로 일부 수확에 나섰습니다. 집에 있는 도토리묵과 함께 도토리묵 무침을 하면 좋겠다 싶었죠.


겨울에 수확하는 적상추와 양상추


집으로 한가득 가져온 수확물로 보답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시금치는 깨끗이 씻은 후 물에 살짝 데쳤습니다. 그리고 소금, 간 마늘, 참치 액젓, 통깨, 그리고 참기름을 넣고 오물조물 무쳤죠. 블로그에서 읽었던 말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작은 시금치가 훨씬 질기지도 않고 부드럽더군요! 그동안 양이 많다고 큰 시금치만 샀었는데, 이제 보니 크다고 꼭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금치 나물 무침


그리고 상추들은 깨끗이 씻은 후 작게 잘라주었습니다. 거기다가 양파도 좀 썰어서 넣었고요. 그 위에 고춧가루, 참치 액젓, 다진 마늘, 식초, 설탕 등을 넣어 맛을 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통깨를 솔솔 뿌려 비벼 간을 보니 다행히 예상했던 아는 맛이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도토리묵을 잘라 넣고 다시 비벼주니 순식간에 도토리묵 무침도 완성되었죠. 용기에 나눌 만큼 담아보니, 이렇게 텃밭 향기 가득한 제 마음이 용기에 가득 담긴듯합니다.


도토리묵 무침



'인연'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저와 제 이웃은 많거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있으면 서로 나누고 바꾸며 지냅니다. 당근 마켓은 나눔의 미학이 녹아있지만, 근본은 돈이 오고 가는 거래이지요. 하지만 저희들은 돈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는 나눔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나눌 때 무언가 돌아오겠지라는 기대보다는, 내가 나누면 상대방이 기뻐하겠지라는 행복감이 우선이죠. 


나이를 먹어갈수록 살아가면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나와 통하는 사람이 심지어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도 행운인데, 이렇게 왕래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까지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첫 만남은 모두 '우연'이었습니다. 어린이집 앞에서 혹은 집 앞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나서 인사를 시작하고 그렇게 인연은 시작되었죠. 소위 말하는 '인연'은 마치 '기회'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인연은 기회만큼 누구나 잡고 싶죠.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오지 않습니다. 기회도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해야 오듯이, 인연도 노력하지 않으면 그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기 쉽습니다.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 마시고, 가벼운 인사라도 해보는 건 어떠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인연'으로 이웃이 다가올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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