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탓하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방어 전략을 잘 구사해야 살아남는다.

by zejebell

한 몇 년쯤 작은 회사에서 비서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다. TV에서 나오는 날씬하고 어여쁜, 깨끗한 정장을 입은 그런 비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요즘 전참시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매니저 비슷한 이미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말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일했었는지 지금 뒤돌아보면 아마도 젊었고 세상을 잘 몰랐고 또 그때 시기가 취직이 많이 어려웠던 시기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하면 뭔가가 달라질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 아직 있었던 시절이었다.


개인적인 일 말고 회사 내 일과 회사 밖에 개인 사업에 대해서 조율하는 업무였다. 사실 모든 뒤치다꺼리를 하는 잡일이었다. 운전 빼고는 정말 모든 일을 다 했던 것 같다. 정말 퇴근하고도 저녁 늦게 업무지시를 받은 적도 많았고 업무체크를 한 뒤 보고를 퇴근 뒤에도 해야 했었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도 전화를 받고 다시 복귀해야 할 때도 있었다. 진짜 어떻게 일했는지 모르겠는 일정이었다.


그때 나의 상사는 늘 남탓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잘못된 모든 일이 내 탓이라는 상사의 말에 진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보니 그가 내린 업무 지시가 다를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다. 녹음까지는 아니었고 모든 것을 적어서 기억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 물론 사실이 그래도 상사의 잘못을 일일이 지적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고 최소한의 내 방어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방어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날 아마도 상사 입장에서는 업무지시를 하고 나를 탓할 때마다 말대꾸하는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날 탓할 때 조금은 미리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탓하거나 지적하지 않았을까 하는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남 탓을 하면서 자신의 화풀이 대상으로 나를 삼은 것은 내가 그래도 자신에게 대항할 수 없는 약자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신경질에 자신이 했던 업무 지시 내용으로 맞받아 말(라고 쓰고 대꾸라 읽고 싶다.) 하니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딱히 자신이 했던 말로 자신에게 대항하니 어떤 걸로 트집 잡아야 하는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상사가 내 탓을 하는 횟수는 좀 줄기는 했지만 공격의 방향이 바뀌었다. 업무에서 개인적인, 사적인 영역으로 넘어왔다. 지금이야 그러면 안 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지금도 그런 사람 많을 것이다.)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그런 것이 없었다. 그저 상사가 하라면 해야 되는 분위기였고 그것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영역의 구분이 없는 매우 불공평하고 감정적인 환경이었다.


나는 스트레스가 상당히 쌓여갔다. 조금만 긴장을 풀면 모든 비난이 나에게 쏟아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물론 내가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는 건 아니었기에 어떤 면에서 비난이 정당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도 쏟아지는 비난은 그것을 구분할 수 없게 했다. 업무 효율은 당연히 떨어졌다. 잘해서 많은 성과를 내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비난받지 않을지에 대해 방어적인 입장으로 일했으니 말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나에 대한 비난은 조금 더 약한 자를 찾아내자 그에게로 옮겨갔다. 그리고 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바뀐 비난의 대상자는 마음이 여리고 말대꾸를 전혀 하지 못하는 신입시절의 내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괜한 죄책감도 들었다. 일하면서 느끼는 쥐꼬리만 한 성취감과 더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는 불편한 내 마음을 메꿀 수 없었다. 여전히 남 탓만 하면서도 잘만 먹고사는 나보다 행복해 보이는 그 인간을 보자니 심사가 뒤틀렸다. 그는 아마도 계속 그렇게 살 것이다. 그리고 난 그 꼴을 옆에서 더 이상 보기가 싫어졌다.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그 조직의 문화를 내가 바꿀 수 없다는 좌절감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조직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문제는 조직원들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개개인의 책임의식의 부제로만 몰아붙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조직 문화 자체에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더 올라가 보면 책임자의 문제가 분명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책임자 본인이 그 문제를 깨닫지 못한다면 계속 갈려나가는 것은 밑에 조직원들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남 탓을 해야 내가 살아남는 조직문화가 변하지 않고 계속 아래로 내려오는 것일 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나만 놓고 보자면 난 그 당시 비난에 꽤 잘 방어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옮겨간 비난을 그냥 눈감았다던가 아님 내가 능력이 좀 돼서 비난을 잠재울 정도였다면 일을 그만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정쩡한 내 감정이 날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가 사회생활을 할 때 쓸데없는 감정교류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방어를 더 철저히 하는 습관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남 탓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 불평불만을 늘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과는 아예 어떤 접점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것은 사적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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