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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거리두기'

사례 1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를 꼽을 때 비트겐슈타인을 이야기하면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분명 철학계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입지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그의 삶은 그렇게 화려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철강 회사를 운영하는 그의 집안은 어마어마한 부자였다. 자신들의 궁으로 브람스나 슈만과 같은 음악들을 초빙하여 연주회를 열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집안에는 아주 큰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우울증이었다. 비트겐슈타인에게는 네 명의 형이 있었다. 그 중 첫째 형은 아버지와의 불화로 자살하였고, 둘째 형은 군대에서 자살을 한다. 셋째 형도 술집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다. 의학적으로 보았을 때 가족 중 한 명만 자살하여도 다른 가족의 자살률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데, 세 명의 형이 자살을 하였으니 비트겐슈타인도 그 문제로부터 자유로울리가 없았다.


비트겐슈타인은 평생을 자살 충동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마주하며 살았다. 그렇다는 그는 자살했을까? 그렇지 않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뜻이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은 당대의 유명한 철학자인 러셀을 찾아가 그의 밑에서 짧은 기간 철학을 배운 후, 시골의 한 오두막집에서 철학에 몰두했다. 그러던 도중 1차 세계대전이 발생했고, 평생 죽음을 마주하며 지냈던 그는 오스트리아군에 자원 입대하게 된다. 그는 가장 위험한 보직에 자원하며 전장을 누비면서도 늘 노트를 지니고 다녔다. 철학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결국 이탈리아 포로수용소에서 한 연구를 마무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논리철학논고>다.


전쟁이 끝난 후 비트겐슈타인은 막대한 유산을 상속 받았다. 전쟁 당시 집안이 보유했던 미국 채권의 가격이 오르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돈에는 별다른 가치를 두지 않았던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재산을 형제자매와 예술사들에게 나누어준다. 그의 가치는 철학에 있었기 때문이다.


<논리철학논고>는 100페이지 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책이지만 출판과 동시에 철학계를 평정했다. 그 또한 스스로 "모든 철학적 문제들을 궁극적으로 해결했다"라고 이야기하며 철학 연구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시골로 내려가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한다. 이후 자신의 주장에 몇 가지 문제를 발견한 그는 다시 철학을 연구하며 일생을 보냈고, 그 사이 발생한 2차 세계대전에는 또다시 자원입대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그의 나이 62세에 전립선 암을 선고 받고 의사로부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평생을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지냈던 비트겐슈타인은 "아주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긴다. "사람들한테 내 삶이 아주 멋졌다고 전해주세요(Tell them I've had a wonderful life.")"


당신은 평생을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살았던 사람이 자신의 유언으로 "내 삶이 아주 멋졌다"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누가 보아도 비트겐슈타인의 삶은 죽음과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의학적으로 보면 자살할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몇 배는 더 높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설령 자살 충동을 느낄지언정, 전립선 암 선고에 대해 "아주 좋다"며 반길 정도로 죽음을 기다려왔을지언정, 그는 삶에서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명확하게 한 뒤, 그에 전념한다.


세계적인 부자가 될 수 있는 자산에도, 곧 죽을 수 있는 전쟁 속에서도, 그는 꿋꿋이 '세상의 진리를 탐구한다'라는 자신의 가치를 지키며 오롯이 그 가치에 전념한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신의 가치를 명료화한 뒤, 자신이 원하는 가치에 전념하는 것. 비트겐슈타인이 자살로 삶을 마감하지 않았던 것도, 그가 철학계를 평정할 만한 성과를 이뤄낸 것도, 그 누구보다 명확하고 확언적으로 '거리두기'를 실천했기 때문이 아닐까?


Tell them I've had a wonderful life. 가슴에 새겨둘 만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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