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면 할 수 있지

D+14514 아저씨 / D+3311 첫째 / D+2446 둘째

by 바다별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둥, 리안이 방과후 수업으로 한자 선택하도록 이야기 좀 잘 해봐."


한자를 잘하면 좋은 점이 많다.

쓰는 법까지는 모르더라도

뜻과 음을 아는 것 만으로도 언어생활이 훨씬 풍부해진다.

나 역시 한자의 도움을 많이 받은 편이라,

아이가 한자를 배웠으면 하는 아내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본인이 원치 않는다니... 난감한 일이다.


첫째는 이미 1학년때 방과후 수업에서 한자를 배웠다.

꼼꼼하고 성실한 편이라 무난하게 8급 시험을 통과했는데,

합격과 별개로 좋지 않았나보다.

이유는 당연히 재미가 없어서다.

마술, 요리, 컴퓨터, 배드민턴...

재미있는 수업이 줄을 섰는데 한자 따위가 눈에 들어올리 만무하다.

나라도 그럴 것 같아서 할 말이 없다.




그렇게 아내의 말이 잊혀질 때 즈음 한자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개학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딸은 슬슬 방과후 수업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엄마, 나 한자 안하면 안돼?"

"엄마는 한자랑 컴퓨터는 했으면 좋겠어. 이번에는 한자 먼저 하자~"

하지만 아내는 요지부동.

대화를 듣다가 내가 끼어들었다.

"아! 한자 좀 어렵긴하지. 아빠도 한자 하긴 해야하는데..."

"아빠, 한자 몰라?"

"예전에 배웠는데 전부 잊어버렸어. 좀 해야할 것 같아."

"넉 사 어떻게 쓰는 줄 알아?"

"가로로 네줄 쓰는거 아냐?"


뻔한 답을 틀리자,

곁에서 듣고 있던 첫째와 둘째 모두 웃음이 터졌다.

한참을 웃다가 슬쩍 낚시를 던져본다.

"아빠도 이번에 리안이랑 같은 걸로 시험쳐야겠어. 대결하는거 어때?"

"좋아! 엄마, 나 이번에 한자 신청해 줘!"

그렇게 첫째는 기분좋게 한자를 신청하기로 했다.

1학년 입학을 앞둔 둘째도 한자를 하겠다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둘째는 잠들기 전 나와 함께 책을 읽는다.

원하는 책은 둘째가 직접 고르는데,

요즘은 "올림포스 가디언"이라는 그리스신화 전집에 빠져있다.

총 60권이 넘는 전집인데 1권부터 순서대로 날마다 한 권씩 읽는 중이다.


어느 날 둘째가 말했다.

"아빠, 나 사실 5권은 처음보는 거야."

오래전부터 늘 보던 전집인데,

처음 본다니 이해가 되지 않아 물어봤더니 재미있어 보이는 책만 골라가며 여러 번 봤단다.


5권을 다 읽고 아이에게 물었다.

"어때? 재미없어?"

"아니. 재미 없을 줄 알았는데, 안그래. 좋아."

내 물음에 아이는 내일도, 모레도, 글피에 볼 책도 처음이라며 자랑(??)을 한다.




해보면 재미있는데 시작하기 싫은 것들이 있다.

어려워 보여서 혹은 재미없어 보여서...

이유도 여러가지다.

하지만 의외로 실제로 해보면 기대하지 못한 즐거움이 있는 경우도 많다.

영롱한 초록 민트초코처럼,

눈으로 봐서는 탈락확정이지만

입에 넣어보면 완전히 내 취향인 일들이 있는 것이다.


할까 말까 망설일 때.

혹은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을 때.

부모가 함께 하는 것은 아이에게 큰 힘이 된다.

지루한 순간을 함께 견디고,

힘든 포인트를 서로 공감하다보면

아이는 처음 가졌던 거부감을 까맣게 잊는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졌던 나의 목표는

두 아이의 수학문제집을 함께 푸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흥미를 갖게 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고교시절 한 번 수학을 실패해 본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나 역시 혼자서는 못 해냈으니 아이들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어찌보면

함께 하면 더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인가 보다.


한자도, 독서도, 수학도.

우리 모두 잘 해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