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는 출산일기_가족을 완성시킨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잠시 군을 떠나 석사과정을 밟으며, 오랜만에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익숙하지 않은 공부를 따라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군에서 일하던 때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늘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 버티던 삶이 서서히 희미해졌고, 학생이라는 신분이 조금씩 몸에 익어갔다. 나와 가족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둘째를 가져보는 게 어떨까?”
우리 부부가 둘째에 대하여 생각한 것도 그즈음이다.
지나간 어려움이 잊히고, 편안한 현실에 익숙해지자 자연스럽게 둘째를 갖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가 태어난 지 1년 남짓 지났으니, 지금 둘째를 가지면 두 살 터울이 된다. 게다가 다시 해군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이가 태어나면 육아의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 나눌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있었다.
공교롭게 아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둘째를 갖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담배는 원래 피우지 않았으니 금연 걱정은 없었다. 술을 끊고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엽산과 영양제를 챙겨 먹고, 잠도 푹 잤다. 강제로 회식에 참석할 일이 없으니 오히려 첫째 때보다 임신을 준비하기 편했다.
“지금이 딱 타이밍이야.”
결연한 각오를 했기 때문일까. 마음속에 단단한 의지가 생겼다.
실제로 이번 기회를 놓치고 다시 군으로 돌아가게 되면 다시는 둘째를 가질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지난 몇 년의 고생을 뻔히 알고 있는데, 나 혼자 주말부부를 하며 둘째를 가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내심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간절함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아쉽지만 첫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우리는 둘 다 얼마나 크게 낙담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아이 생기는 일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님을 알지만, 당시엔 막연한 기대와 조급함 때문에 실망이 더 컸다. 둘째는 우리의 기대가 포기에 가까워질 때 찾아왔다. 아내의 손목 치료를 위해서 임신을 조금 미룰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안 걸까. 둘째는 그렇게 한 박자 늦게 우리를 찾아왔다.
둘째의 태명은 두둥이었다.
잠시 방심한 틈에 “두둥!”하고 나타난 느낌도 있었고, 첫째처럼 태명에 “둥” 자를 넣고 싶다는 아내의 바람도 담겼다. 두둥이의 등장으로 우리 가족은 또 한 번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아내의 입덧은 다행히 첫째 때보다는 덜했다. 이때는 입덧을 덜어주는 약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임신 전과 같을 수는 없어서 아내는 가만히 누워 쉬는 때가 많아졌다.
당연히 둥글이와 내가 둘이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다녀오고, 카페에 가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살 아이가 아빠와 집을 나서는 것을 즐거워한 덕분에, 아내는 좀 더 편히 쉴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둘째의 임신기간은 두둥이의 출산을 기다리는 시간만이 아니라 둥글이와 관계를 다져가는 시간이었다.
둘째를 가지는 것은 우리 부부만의 일이 아니었다.
두둥이로 인해 삶에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 사람은 바로 둥글이였다. 둥글이는 양가 모두에게 첫 손주였다. 2년이 넘게 첫 손주로서 확고부동한 사랑을 차지했던 둥글이에게, 두둥이의 등장은 마냥 행복한 일은 아니었다. 동생의 탄생은 그동안 당연히 내 것이었던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둥글이도 누나가 될 준비를 해야 했다.
“둥글아, 동생이 태어난다고 해서 엄마 아빠가 둥글이를 덜 사랑하는 게 아니야. 둥글이만큼 큰 사랑이 두둥이한테 또 하나 생기는 거야.”
우리는 둥글이에게 동생이 태어난다고 해서 사랑을 나눠 갖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줬다.
두둥이가 태어나서 둥글이의 사랑을 빼앗아 가는 것이 아니라 두둥이만큼의 사랑이 더 늘어나는 것이라 설명해 줬다. 동생이 태어나는 동화책을 함께 읽어주고, 두둥이의 출산 준비도 둥글이와 함께했다. 나와 아내는 두 아이가 잘 지내기를 진심으로 원했고,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부부에게 달려 있었다.
우리의 마음을 알아서인지 둥글이는 동생이 생긴다는 사실을 대체로 반가워했다.
둘째를 임신하면서 아내가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과 주말 나들이를 나와 둘만 함께 다녀야 하는 것은 둥글이에게는 서운한 일이었다. 하지만 둥글이는 크게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누워있는 엄마를 꼭 안아주고, 나들이 다녀온 이야기를 엄마에게 조잘대며 이야기해 주곤 했다. 이제 겨우 두 돌이 지난 둥글이도 그렇게 누나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