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는 출산일기_가족을 완성시킨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둥글아, 너무 걱정하지 마. 좀 있으면 도착할 거야.”
나는 걱정하는 아이를 달래며 바쁘게 운전했다.
한 손은 아내의 배에 얹고, 한 손은 요리조리 핸들을 돌려댔다. 그 와중에 입은 쉴 새 없이 3살 딸아이를 달래야 하니, 나도 정신이 없었다. 그때 참다못한 아내가 말했다.
“둥, 나 이제 힘 들어가는 것 같아. 얼마나 남았어?”
내비게이션에 남은 시간은 아직 30분.
‘다 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한참 남았는데, 어쩌지? 경찰을 불러서 길을 열어달라고 해야 하나?’
도대체 어떤 대답을 해줘야 아내에게 도움이 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첫째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졌고, 아내의 배를 쓰다듬던 나의 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다. 마치 세상으로 나오려는 두둥이를 애써 막는 듯했다.
“아기 상어 뚜루루뚜루~”
갑자기 둥글이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긴장하지 말라고 틀어준 노래에 오히려 신이 났나 보다. 둥글이는 노래를 부르고, 길가에 꽃을 보고 인사하고,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소리쳤다. 꽉 막힌 강변북로 위에서 아내의 신음소리와, 아이의 노랫소리가 정신없이 뒤섞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내의 진통은 계속 빨라졌다. 어느새 진통주기는 5분을 넘기지 않고 있었다.
‘진짜 차 안에서 낳게 되는 건가? 이런 일이 생긴다고??’
오른손은 점점 더 힘이 들어가서 아내의 아랫배를 누르다시피 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10여분을 더 달리고서 드디어 조산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조산원에 연락해 둔 덕분에 조산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은 이미 도로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는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두 선생님의 부축을 받으며 조산원으로 향했다. 힘 없이 끌려가는 엄마를 보니 갑자기 걱정이 폭발한 걸까? 방금 전까지 노래를 부르던 첫째가 울음이 터졌다.
아이를 챙겨서 조산원으로 갔더니 아내는 이미 내진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제때 잘 오셨어요. 자궁문이 8cm나 열려 있었어요.”
조산사 선생님의 말에 허탈함이 스친다. 첫째 때 10시간을 2시간으로 압축해서 겪었나 보다. 태동측정기를 두른 채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하는 부모들은 첫째와 둘째의 관계 형성을 위해서 둘째의 출산에 첫아이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원한다고 무조건 가능한 것은 아니라서 2살 정도 터울이 있으면서, 엄마가 아이를 낳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둥글이는 그동안 책도 많이 읽고 이야기도 많이 해줬기 때문인지 아내가 출산하는 내내 곁에서 잘 있어줬다. 진통하는 아내를 가만히 쳐다보면서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머리를 쓸어주기도 한다. 바로 지난밤 조산원에 왔을 때만 해도 어찌나 잠투정을 하는지 함께 출산하는 것이 가능할까 걱정했는데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촉진제도, 유도제도 없이 순전히 아내와 두둥이의 호흡에 따라서 가족의 응원 속에서 진행되는 자연주의 출산. 2년 전에는 아내와 나 둘 뿐이었지만 이번에는 둥글이까지 곁에서 응원을 한다.
“엄마, 너무 아파...”
그때처럼, 또다시 장모님을 찾는 아내를 보며 쉽지 않은 선택을 해준 아내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존경을 느낄 때 즈음 두둥이가 세상에 나왔다. 조산원에 도착하고 1시간 45분 만에 출산. 12시간을 넘겼던 누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두둥이는 영화 같은 출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동생의 출생을 바로 곁에서 지켜본 둥글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둥글이의 얼굴에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동생을 만났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작고 여린 동생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진다. 두둥이를 안고 있는 나에게 와서 한 번만 안아보면 안 되냐며 난리다. 동생이 너무 궁금한 둥글이는 항상 자기 것이던 엄마의 옆자리마저 동생에게 양보했다.
혹시 부서질세라 조심스럽게 손끝으로 동생의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한번 만져보고 지켜보고, 다시 한번 만져보고 지켜보던 둥글이의 얼굴에 갑자기 함박웃음이 떠오른다.
“두둥이, 너무 예쁜 거 아냐?!!”
그래.. 되었다.
나와 아내가 굳이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한 이유는 이것이었다.
출산의 과정을 28개월 딸아이와 함께 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아이의 말 한마디에 내가 바라던 모든 것들이 담겨있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새 식구 맞이는 무사히 끝이 났다.
자연주의 출산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그리는 출산의 모습과 가족의 탄생에 대한 기대는 다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이 선택을 함께 해냈다는 자부심이 남았다. 함께 겪었던 그 감정과 경험은 앞으로도 흔들림 없는 뿌리가 되어 우리를 단단히 묶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