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쓰는 출산일기_가족을 완성시킨 자연주의 출산 이야기
첫째도 그랬는데, 둘째도 느긋한 성격은 아닌걸까?
예정일을 10일쯤 남겨둔 저녁, 아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아내의 말 한마디에 온 가족이 비상에 걸렸다.
나는 아내에게 물어가며 출산가방을 챙겼다. 이번에는 방울토마토는 넣지 않았다.
첫째 때, 괜히 챙겼다가 짐만 됐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짐을 챙기는 아빠를 보고서 둥글이는 신이났다.
여행가는 줄 아는 눈치다.
“내일 새벽에 갑자기 두둥이 만나러 가게 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자~”
혹시 새벽같이 나가게 될 수도 있으니 아이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다.
내일이면 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말에 둥글이는 들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잠들었지만, 우리는 여느 때처럼 평온한 아침을 맞았다. 너무 아무 일이 없어서 오히려 꿈같은 아침이었다. 며칠이 흘렀다. 울산에서 급히 올라오셨던 장모님이 다시 내려가셨다. 우리도 평소같은 하루를 보냈다. 두둥이는 마치, 아직 엄마 뱃속에 더 머무르고 싶은 듯 조용했다.
급하게 출산 준비를 한지 일주일만에 다시 진통이 시작됐다. 이제 예정일은 코앞. 지금 출산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은 때였다. 약하지만 규칙적인 진통이 계속되어 우리는 조산원으로 향했다.
첫째를 들쳐 안고 조산원에 도착한 것은 화요일 밤이었다.
아이를 잠시 간호사 선생님께 잠시 맡기고, 아내는 내진과 수축체크를 받았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쎄하다. 예상보다 진통이 많이 약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온 걸까? 둘째라서 첫째보다 진행이 빠를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서두른 모양이었다.
“아직은 괜찮은 것 같은데, 하루밤 더 지켜보기로 해요.”
조산사 선생님은 하루밤을 조산원에서 보내며 경과를 보자고 하셨다. 이미 늦은시간이라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우리 3식구는 좁은 침대 위에서 두둥이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냈다.
짹짹짹짹, 사아악 사아악
창밖의 새소리와 빗자루 소리에 잠에서 깼다.
왜 그날따라 새소리와 환경미화원분들의 빗자루 소리는 그렇게도 크고 또렷하게 들린걸까.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햇살에 잔뜩 죄어있던 긴장감이 봄눈 녹듯 스르르 풀려버렸다. 또 다시, 너무나 평온한 아침이었다.
“어머나! 괜찮으세요?”
스스로 일어나 화장실로 가는 아내를 보고서, 조산사 선생님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밤새 우리를 기다려 준 조산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께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수요일 아침 투명하게 밝은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둥글이부터 어린이집에 등원시켰다. 이쯤되니, 때가 되면 나오겠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낮잠을 잤다.
눈을 뜨니 어느새 늦은 오후, 아내가 말했다.
“근처에 브런치집이 맛있다던데 가볼까?”
“좋아. 가보자.”
나도 아내도 기분을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가 나오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만, 벌써 몇 번이나 양치기 소년이 되다 보니 우리 마음도 조금 지쳐있었다. 간단하게 준비하고 외출했다. 그런데 가게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려는데 아내가 말했다.
“그냥 팥빙수나 하나 사서 가자. 나 진통 올 것 같아.”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내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느긋한 마음으로 팥빙수를 사러 카페로 가려는데, 아내가 다시 말했다.
“아니야. 팥빙수도 필요없어. 아이스크림이 낫겠어.”
이쯤 되니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긴박감은 아직 아내와는 거리가 멀었다. 집 앞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또 걸음을 멈췄다.
“잠깐만. 그냥 빨리 집에 가자.”
서둘러 집으로 향했지만, 몇 걸음 가다 쉬기를 수 없이 반복해야 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할 만큼 진통이 심해져 있었다.
“두둥이 아빠인데요. 지금 진통이 와서 바로 조산원으로 갈게요.”
부랴부랴 조산원에 연락하고, 준비를 마쳤다.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던 둥글이를 급히 데려다 차에 태웠다. 수요일 오후였다.
집에서 조산원까지 거리는 약 20km. 네비게이션에 뜨는 예상소요시간은 1시간이었다. 다행히 출퇴근 시간이 아니었지만 평일 오후 3시의 강변북로는 차들로 가득했다. 비상등을 켜고 이리저리 차선을 바꿔가며 애썼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아내의 진통주기는 얄미울 정도로 규칙적으로 시간을 줄여갔다.
'둘째는 첫째보다 진행이 빠르다더니...'
첫째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진행이 빠르다 해도 이 정도일 줄 누가 알았겠나. 여차하면 정말로 차 안에서 아이를 낳을 것만 같았다.
10분, 5분...
네비게이션의 도착 예정 시간은 줄어들지 않는데 아내의 진통주기는 어느 새 5분대가 되었다. 아내는 조용히 눈을 감고 진통을 견디고 있었고, 둥글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인지 굳은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차 안은 점점 조용했고, 침묵이 길어질수록 불안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