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질이 많아서 못 뚫나봐

D+3127 첫째

by 바다별

낮에 커피콩 사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밤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에서 5분도 안 걸리는 거리.

혼자서 잠깐 다녀오려 했는데 첫째도 함께 나섰다.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낫다.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다녀오기로 했다.


휘적휘적 걸으며 카페에 도착했더니 그 사이 모기가 첫째의 손등을 물고 달아났다.

걷고있는 아이의 손등에서 어떻게 피를 빨고 간걸까. 먹고 살자고 애쓰는 모기도 보통은 아니다.

밤시간에 쉽게 만나기 힘든 토실토실한 어린이였으니 포기할 수 없었겠지...


우리집 두 어린이는 모기에 물리만 심하게 붓는 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모기가 물지 못하도록 펄떡거리며 걷기로 했다.


"모기가 못 물게 쉬지말고 움직여, 팔다리도 휘적휘적 이렇게 이렇게"

시범을 보이는 나를 따라서 딸도 열심히 팔을 휘적인다.

그렇게 우리는 풍선인형처럼 퍼덕이며 달밤을 걸었다.


"아!!"

양팔을 휘젓던 딸이 뭔가 깨달은 듯 멈추고, 덩달아 나도 깜짝놀라 물었다.

"왜? 또 물렸어?"


"아니, 깜빡하고 목을 안움직였어."

목이 걱정됐나보다. 이럴 때 현명한 해결책을 찾아주는 것이 바로 아빠의 역할이다.


"목은 이렇게 움직이면 되지~"

양팔을 휘저으면서 고개까지 빙빙 돌렸더니 첫째가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렇게 어떻게 걷냐고~!!ㅋㅋㅋ"

초등학교 2학년쯤 되면 판단이 매우 현실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고개까지 돌리며 걷는건 어려운 일이라 잽싸게 뛰어 아파트에 돌아왔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해서 가만히 서있는 나를 보고서 첫째가 또 묻는다.

"아빠, 안 움직여?"


"아빠는 괜찮아. 모기가 별로 안 물거든"


"왜??"


"글쎄? 이제 어른이라 피가 맛이 없나?"


아! 알겠다. 각질이 많아서 못뚫나봐

초2어린이는 제가 말 해놓고선 까르르 웃음이 터졌다.


아... 긁혔다;; 기분이 상하면서도 한편으론 진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역시 초등학교 2학년쯤 되면 판단이 매우 현실적이다.


정말… 각질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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