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132 첫째
오늘 물놀이 하러 갈 건데, 시간 어때?
전화기를 들고 있는 딸아이의 목소리가 분주하다. 방문을 굳게 닫고서는 뭐가 그리 심각한지,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후, 딸은 스스로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나의 도움 없이도 집전화기를 들고 친구들에게 차례로 연락한다. 몇몇 친구들의 번호는 이미 외우고 있는 듯했다. 아직 휴대폰이 없으니 집전화는 오롯이 딸아이의 몫이 되었다.
지난 토요일은 지역 공동체에서 주최한 어린이 물놀이 축제날이었다.
아침부터 딸은 전화기를 손에 들고 거실을 이리저리 오갔다.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전화기를 들고서 돌아다니는 것은 나를 닮은 걸까?
초등학생들의 약속 조율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떤 친구는 오전부터 시간이 되고, 또 다른 친구는 학원 때문에 오후 늦게야 가능했다.
영원히 답을 찾지 못할 것 같던 통화가 끝나고 나서야 약속이 정리됐다.
어린이들은 오후내내 공원 물놀이장에서 시원한 물놀이를 즐겼다. 물이 튀고, 웃음소리도 터졌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있으니 나도 함께 신이 났다.
물놀이가 끝난 뒤에는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저녁식사 자리가 이어졌다.
몇 번 함께했던 가족이라 대화도 익숙하게 흘렀다. 이제는 제법 자란 아이들 덕분에 어른들도 편안하게 식사하고 대화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상대 집에 초대받아 못 다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이들은 영화를 보고, 어른들은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하루가 흘렀다.
물놀이를 나갈때까지만 해도 달밤을 걸으며 집으로 오게 될 줄은 미처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계획에 없던 하루라 오히려 선물처럼 느껴진다.
부모가 계획하지 않은 하루.
나는 그저 첫째를 따라다녔을 뿐인데 가득 찬 하루를 선물 받았다. 앞으로도 종종 이런 선물을 받게되지 않을까? 다음에 딸이 가져올 선물같은 하루가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