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것도 숙제가 되어버린 듯 “가야지 가야지” 하던 스키장.
결국에 시즌 마감 날에서야 엄마 차를 빌려 뽈뽈뽈 향했다.
올 겨울 처음이자 마지막 스키 타는 날.
보통이라면 마지막 스키라고 확신하지 못하겠지만.
오늘은 정말 마지막이다.
오늘이 확실히 처음이고, 확실히 마지막이다.
작년에 왔을 때랑은 다르네?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 조카를 돌보는 엄마 신경을 안 써서일까.
가벼운 마음으로 스키장의 입구와 가까운 쪽 주차장 자리에 차를 세운다.
낯선 곳에 와서 조신조신 갑자기 행동이 귀여워진 여자친구.
절에 갔을 때 불경하게 불상 앞에서 김밥을 먹지 말라던 일이 생각난다.
잘 모르는 곳에 가면 엄청나게 겸손해지는 편이다.
잘 아는 곳은 순식간에 안방으로 만들기도 하더라.
리프트를 타고 산 중턱까지 순식간에 이동!
오금이 저려온다. 고층에서 창을 내려보는 것 같은 느낌.
한걸음만 내딛으면 모든 것과 작별이라는 짜릿함.
다들 아무렇지 않은 듯 작별과 등을 마주하듯
나도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히 세상의 끝을 엿본다.
아니! 생각보다 재밌잖아?
눈이 오기에는 벌써 쑥 커버린 올해.
마지막 날이기에 눈은 더 이상 뿌려주지 않아.
엉덩이랑 무릎은 돌얼음에 갈리고 있어.
빌린 장갑은 전에 젖은 적 없는 정도로 젖어버렸어.
사람들이 신나게 산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아! 스키라는 스포츠는 참 좋구나.
스키는 도착하는 게 목적이 아니구나.
미끄러지는 것이 목적이구나!
신나게 슉슉슉 미끄러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차 안이야.
강원도에서 서울로 슉슉슉 미끄러진다.
앞차 뒤차 스키 타듯 미끄러진다.
그래도 운전하는 건 힘들어.
이번엔 도착하는 게 목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