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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등푸른 Oct 21. 2021

가난은 떠났지만 흔적이 남았다.

서로 보완하며 살아가기.

가난이란 무엇일까? 먹고 싶은 것을 제때 못 먹고 임신한 와이프가 케이크를 먹고 싶다 했지만 크림빵을 사다 줬어야 하는 지금도 생각만으로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그 사람의 이야기만이 가난일까?



내가 말했지. 가난은 상대적인 거라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가난이라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가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가난해서라는 책의 겉표지를 보게 되었다. 표지의 소개글이 너무나도 나의 일상을 대변하는 것 같아 차마 그 책을 열어볼 수가 없었다. 지금은 우리 부부 모두 꾸준한 개미로 회사에 일조해 과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매월 때 되면 돈이 나와 이 돈으로 맛있는 걸 참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만 내가 자라온 환경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차를 바꾸거나 뭔가 큰돈이 들어가는 소비를 하기 전에 신혼생활을 했었던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을 떠올리며 "복정 한 번만 다녀오고 나서 다시 생각해"라는 말을 한다. 복정동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그곳은 다가구주택의 메카로 우리같이 새로 시작하는 부부들에게 저렴하지만 양질의 빌라 거주지를 마련해 주는 정말 고마운 동네이다. 복정동에서 우리는 주변에 식당이 없어 - 그리고 이때 우리는 차도 없었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다가 저녁을 매번 해 먹었고 그 덕분에 외식비도 아끼고 내 요리실력도 한층 더 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빌라를 벗어 나 내가 꿈꾸는 화이트 우드톤의 인테리어가 갖춰진 아파트에서 살리라는 다짐을 매 아침마다 각성하도록 도와주었다.




1년 10개월을 거주했던 나의 첫 신혼집. 작은 싱크대 위에서 매일 저녁 밥을 지어먹었던 순간순간이 행복했다.








쑥스럽지만 나는 코스트코를 복정동에 살 때 처음으로 가봤다.



대형마트는 이마트가 전부였고 뭔가 싸게 사기 위해 연회비를 낸다는 개념 자체가 나에게는 상술로 느껴졌다.

그러다 상품권이 있으면 당일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건너 들었고 중고나라에서 상품권을 3천 원 더 웃돈을 주고 사서 처음으로 가보았다. 회원이면 상품권을 살 수 있었는데도 이때는 그런 정보는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와... 역시 사람들이 환호하는 장소에는 그 이유가 있었다. 예전 월마트라는 창고형 할인매장을 초등학생 때 처음가 봤을 때의 그 기분을 떠올리게 했는데 차량을 소유하지 않은 우리 부부에게는 주말마다 대형마트를 가는 이벤트는 없었던 것이다. (그 을 어떻게 들고 올 것이냐)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다시는 코스트코에 못 올 사람처럼 온갖 식재료를 카트에 옮겨 담았고 그날의 쇼핑금액은 무려 20만 원이나 나왔다. 20만 원! 그때 당시 식비로 일주일에 10만 원을 쓰던 나에게는 엄청 큰 금액이었는데 웬걸, 코스트코는 나처럼 물건 살 줄 모르는 스킬 없는 사람에게는 다음날에도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신기한 곳 이었다.



그런데 한층 웃기는 것은 그 20만 원어치 물건을 들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져 택시가 잡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오면서 짐이 많은데 택시를 탈까? 버스를 탈까? 하는 고민은 이미 카카오 택시가 10분 동안 잡히지 않으면서 우리에게 선택의 권한 따위는 없는 것이었다.



결국 버스를 타게 되었고 양재역에서 환승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양재역에서 하차하면서 깨진 나의 4만 원짜리 깔루아 밀크......!



버스정류장에 캐러멜 향이 진동을 하면서 장대비만큼 내 마음도 함께 가라앉았는데 그때 위트 있는 남편의 표정이 날 위로해주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을 것이다. 이때의 기억은 아직도 우리에게 재밌는 추억으로 남았는데 그렇게 당하고도 복정동에 거주할 때 까지는 차를 구입하지 않았던 것이 우리도 참 아끼고 사는 것에 중독되었던것이 아닐까 싶다.



결론이다. 둘이 벌어 값어치 있는 하나를 함께 누릴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경제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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