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두호 Jul 26. 2022

대체 바나나 마을에 뭐가 있는데?

터키 10월의 어느 날 - 아네무리움 고대도시, D400 도로     



-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텐트 안에서 뭉그적거리는 평소와 달리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청명한 하늘 아래 선선한 바닷바람이 부는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는 마틴과 베로의 텐트가 있었다. 기척으로 보아 그들은 아직 곤히 자고 있는 거 같았다. 나는 가볍게 준비를 마치고 홀로 아네무리움 고대도시(Anemurium Ancient city)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명에 비친 아네무리움 고대도시는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색감이 너무나 아름답고 찬란해서 이곳이 버려진 도시이자 무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래전에 폐허가 된 이 도시는 오직 죽음만이 가져다주는 영원한 평온을 간직하고 있었다. 도시의 수많은 건물 중에서 몸 성한 건 단 하나도 없었지만 그것들은 마치 나무나 풀, 돌과 같이 자연의 일부로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입구에는 안내 표시판이 있을 뿐 사람의 기척도 매표소도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네다섯 명의 복원사들이 앙상한 뼈만 남은 교회의 복원 작업에 한창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일을 시작하는 건 훌륭하나 저 인원으로 이곳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려면 어쩌면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무언가 꾸준히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듯 그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기원전 4세기부터 존재했다고 알려진 아네무리움 고대도시는 셀추크의 에페소스처럼 한때는 수많은 선박이 오고 가는 로마의 번성한 항구도시였다. 도시는 한눈에 보아도 절묘한 곳에 세워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깎아지른 절벽이 있는 뒷산과 아나무르 곶은 북쪽과 서쪽에서 사람의 접근을 불허하는 천연의 장애물 역할을 해주었고 그 외에는 견고한 성채와 성벽을 세워 방어했다.


하지만 아무리 튼튼한 도시라 해도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법. 도시는 로마의 쇠퇴와 함께 약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슬람이 대두하는 7세기경, 아랍 세계의 공격으로 결국 몰락하고 만다. 도시가 몰락한 후, 도시를 이루는 돌과 대리석 같은 자재가 근처 사이프러스 섬에 의해 끊임없이 약탈을 당하는 등 갖은 수난을 겪는다. 그 결과가 공중폭격을 당한 것처럼 형태만 겨우 남은 이 모양 이 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네무리움 고대도시는 내가 그동안 방문했던 그 어떤 유적지보다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규모, 보존 상태, 화려함 그 어떤 면을 보아도 유럽과 터키의 유적 중에는 이보다 훨씬 훌륭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난 왜 이 폐허가 된 도시가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걸까? 그 이유를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까 보았던 복원사들을 제외하면 이 유적지를 거닐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자동차 소리라든가 핸드폰 울림소리 등 그 흔한 기계음 하나 들려오지 않는 적막함 속에 난 홀로 이 고대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과거에 3,000명을 수용했다는 극장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로마가 자랑하는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왔다는 대중목욕탕에서는 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를, 300개가 넘는 무덤이 모여 있는 네크로폴리스(죽은 자들의 도시)에서는 망자들의 곡소리가 들려오는 거 같았다.


그건 미어터지는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피로감만 쌓였던, 콜로세움이나 톱카프 궁전에서 얻은 느낌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인파 속에서 오래전 실제 존재했을 순간을 그려본다는 건. 과거에는 사람들이 역사유적을 보며 단 일 초라도 곰곰이 생각에 잠겼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단 한 장이라도 더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와 비례해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사고는 멈춰 있었다. 여기저기 터져대는 플래시와 찰칵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세상에 상상력이 자라날 공간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옛 시대를 걷고 있었다. 먼 옛날 이 도시에 삶의 터전을 마련한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오직 불어오는 바람과 밀려오는 파도 소리만이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 내 상상력은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 버려진 도시는 나에게 더 이상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나는 이 도시를 최초로 건설한 어느 위대한 인물처럼 두 발을 꿋꿋이 대지 위에 붙이고 있었다.


여유롭고 충만했던 아침과 달리 오늘 우리에게 큰 과제가 주어졌다. 마틴은 D400 해안 산길을 타고 가지파사까지 단숨에 치고 가자는 제안을 했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에서 가지파사까지는 80km 정도의 거리가 있었다. 거리도 거리지만 무엇보다 해발 300~500m 정도의 산마루 세 개를 넘어야 했다.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해안 산길의 최대 단점은 크고 작은 오르막 내리막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게 사람을 미치게 한다. 왜 올라가면 다시 내려가고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너무 불공평한 일이다. 올라갈 때는 몸이 힘들고 내려갈 때는 또다시 올라가야겠지, 라는 생각에 마음이 힘들다. 정상이라는 고정된 목표가 있다면 느리더라도 끈기 있게 올라가며 희망을 품을 수 있겠지만 해안 산길은 결코 그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끝을 모르는데 희망을 품으라는 건 너무 무리한 부탁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해안 산길은 이 단점을 상쇄시킬 만한 장점이 있다는 것.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주변 풍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아나무르(Anamur) 지방은 바나나 재배가 유명한 만큼 주위에는 바나나 농가가 가득했다. Yakacik이라는 마을을 지날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바다를 제외하면 시선이 닿는 곳에는 온통 바나나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몇 채의 집들과 모스크, 비닐하우스만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처럼 바나나 나무들 사이로 그 희미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문득 호주의 오지 중의 오지, 레이크랜드라고 하는 작은 마을의 바나나 농장에서 일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바나나 농장에는 바누아트 섬에서 온 흑인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바나나를 자주 먹었다. 평범하게 먹는 것은 물론 오븐에 구워서 먹고, 튀겨서 먹고, 갈아서 먹고, 심지어는 삶아서도 먹었다. 익지도 않은 딱딱한 바나나를 캥거루처럼 우적우적 씹어먹지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나는 이 친구들이 바나나를 유난히 좋아하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어느 , 나는 바누아투인  명이 공동생활하는 숙소에 놀러 갔다. 우연히 숙소에 하나 있는 냉장고 문을 열게 되었고 나는 질겁하고 말았다. 500리터짜리 냉장고는 안이  비어 있었다. 오직 물과 식빵, 우유만이 냉장고의 넓은  하나씩을 독차지하굴러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힘이 좋다는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40kg 넘는 무거운 바나나 열매를 따고 옮기는, 그러니까 가장 고된 일을 도맡아 하는 바누아투 친구들이었다. 누구보다도  먹어야  텐데 고작 이런 것을 먹으며  힘든 일을 하고 있었다니. 그들은 이렇게 아끼고 저축한 돈을 섬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다고 했다.     


터키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수십만 명에 달한다고 들었다. 바나나 숲을 지나가며 나는 이곳에서 일하고 있을 외국인 노동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냉장고도 텅 비어 있을까? 그들도 평소 바나나를 구워 먹고, 튀겨 먹고, 삶아 먹으며 굶주린 배를 채우고 있을까?


굳게 닫힌 이웃집 대문처럼 바나나 나무의 커다란 잎사귀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일말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는 그 옛날 나와 바누아투인 친구들이 그랬듯이, 저 거대한 바나나 숲 어딘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일하고 있을 사람들을 그려보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전 18화 바람 타고 찾아온 해프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