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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Jul 23. 2022

바람 타고 찾아온 해프닝

터키 10월의 어느 날 - 사만다그(Samandag)



- 사만다그에서 Arsus 이어지는 한적한 해안도로. 바람   없이 쾌청한 밤이었다. 우리는 해안 쪽으로  튀어나온 암석의 끝자락에서 야영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가자 어디선가 바람이 솔솔 불어오기 시작했다. 자정을 넘자 바람은 산마저도 날려버릴 만큼 흉포한 기세로 불어닥쳤다. 돌풍이 지나갈 때마다 침낭이 거칠게 펄럭였지만 애써 다독였다. 아무리 바람이 강할지언정 빈대떡처럼 납작하게 누워 있는 사람이 날아갔다는 이야기는 지금껏 듣지 못했다.


눈앞에서 종이나 나뭇잎 따위가 바람을 타고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바람이  강해지자 모래가 날리고 좁쌀만  돌멩이들이 떼구루루 렀다. 그리고 주먹만  돌들이 진자 운동을 하듯 흔들리기 시작했을  나는 생각을 고쳐먹지 않을  없었다. 재수 없으면 바람에 휩쓸려 진짜 빈대떡이  수도 있다!


당장 탈출해야 했다. 부랴부랴 물건을 정리하는데 실수로 캠핑용 베개를 손에서 놓쳤다. 오랜 세월 내 꿀잠을 책임져 준 금쪽같은 베개는 마치 작별 인사를 하듯 바닥을 몇 번 통통 튕기더니 내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이 와중에 베로는 여전히 침낭 속에 누워 게슴츠레한 눈을 껌벅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기 있을래. 가고 싶지 않아.”


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다. 마닐라에서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 앉아 있던 필리핀 여자가 승무원을 붙잡고 물었다.


"저, 속이 답답해서 그러는데 창문을 조금 열어도 괜찮을까요?"


살면서 많은 헛소리를 들어왔지만 그만한 헛소리는 또 처음이었던 거 같다. 물론 잘 몰라서 그랬겠지만 하여간 나는 뒤에서 입을 막고 낄낄대었다. 내 옆에 있던 남자도 웃겨 죽을 거 같다는 표정이었다.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동료여, 침낭이고 텐트고 다 날아가게 생겼는데 대체 그게 말이야, 방귀야.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베로가 내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건 원치 않았기에 나는 그녀를 억지로 일으켜야 했다.



우리는 근처의 폐건물로 피신했다. 악몽 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왔지만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모래폭풍이 휘몰아치고 굉음이 들려오고 나무들은 좌우로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내륙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파도마저도 다시 난바다로 밀어낼 정도로 강력했다. 설상가상으로 핸드폰은 불통이며 물통의 물은 거의 바닥을 보였다. 가장 가까운 마을은 이곳에서 15km 이상 떨어져 있었고 어제부터 말썽이던 내 자전거 바퀴는 또 펑크가 나 있었다. 바람이 멎을 때까지 꼼짝없이 이 냄새 나는 폐건물에 갇히게 된 우리. 이 와중에도 마틴과 베로는 쿨쿨 자고 있었는데 나는 그들의 정신 상태가 심히 궁금해졌다.


다행히 오후가 되자 바람이 잦아들었다. 나는 자전거 수리에 필요한 튜브를 사기 위해서 사만다그로 돌아갔다. 대중교통이 없어서 히치하이킹을 해야만 했다. 튜브를 사고 개인적인 볼일을 보기 위해 사만다그에 와있던 마틴과 합류할 때쯤은 이미 주위가 어둑해진 후였다. 우리는 다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고 운 좋게 택시를 얻어 탈 수 있었다.      


택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전조등 하나에 의지한 채 달렸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폐건물에 혼자 남은 베로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베로는 히치하이킹으로 남미 전역을 여행했을 정도로 용감한 여자이다. 별일이야 있겠냐만 그래도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법. 게다가 하필이면 그녀가 있는 곳이 폐건물이 아닌가. 세상의 모든 홀로 버려진 폐건물에는 귀신이 산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곳에는 돌풍에 휩쓸려 빈대떡이 되어 버린 귀신이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폐건물에 도착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나는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어두워야 할 폐건물 주위가 야구장처럼 환했던 것이다. 헐레벌떡 달려가 보니 폐건물 주위로 승합차 서너 대가 서 있었고 베로는 열댓 명의 잔다르마(지역 치안대)에게 겹겹이 포위되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코너에 몰린 똥강아지처럼 당혹감이 역력했다. 잔다르마가 말했다.


“당신들 우리와 함께 당장 사만다그로 가주셔야겠습니다.”


이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방금 사만다그에서 이쪽으로 돌아왔구먼. 우리는 잔다르마의 명령을 거절했지만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에겐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절대다수에 자동소총마저 가지고 있었으니까. 결국 우리는 강제로 연행(?)되었고 자전거와 함께 승합차 화물칸에 몸을 실었다. 강철로 된 뒷문이 닫혔고 곧이어 철커덩하며 뭔가를 걸어 잠그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앞에는 두꺼운 쇠창살이 운전석과 우리가 탄 화물칸 사이를 분리하고 있었다.


불과 반 시간 전에 지나왔던 어두컴컴한 길을 다시 달려서 도착한 곳은 사만다그에 위치한 잔다르마 본부. 그곳은 6m가 넘는 높은 담과 철조망이 둘러쳐진 경계가 삼엄한 곳이었다. 입구 초소에는 완전무장을 한 군인이 눈을 부라리며 보초를 서고 있었다. 거대하고 두꺼운 자동 철문이 천천히 열리자 엄청나게 넓은 부지와 특색 없는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차는 건물 앞에 멈췄고 우리는 곧 건물의 안쪽 깊숙한 곳으로 안내되었다. 혹시나 모를 도주를 방지하려는 듯 앞뒤로 잔다르마가 우리를 따라왔다.


‘대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걸까?’


마침내 도착한 널찍한 밀실에는 카이사르처럼 근엄하게 생긴 어떤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어깨 견장에는 별 두 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직위가 말해주듯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 아저씨다. 그 아저씨는 우리를 보더니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웰컴 투 터키! 차이?”


터키에서 누군가에게 차이를 권유받고 난처했던 적은 이스탄불에서 빌어먹을 양탄자 장수의 꼬임에 넘어갔을 때 딱 한 번뿐이었다. 그 외에 차이는 마치 평화와 우정의 상징이라도 된다는 듯 언제나 나와 터키 사람들 사이의 허물을 벗겨주었다. 이 본부의 최고책임자인 별 두 개 아저씨는 쌍수 들고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차이를 마시며 우리의 신원 조회를 마친 그는 우리에게 햄버거를 사주고 근처의 숙소를 제공해 주는 등 큰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정도로 격한 환영을 받을 진 몰랐지만 나는 잔다르마를 만났을 때부터 일이 잘 풀릴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여행하면서 잔다르마에게 도움을 받은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예상치 못한 싸라기눈을 만나 속옷까지 홀딱 젖은 날, 그들은 버스 정류장 밑에서 참새처럼 떨고 있던 나를 그들의 따뜻한 진지에 초대해 쉬게 해주었다. 코로나로 터키가 발칵 뒤집힌 시절, 검문소를 지키던 그들은 나의 사정을 이해하고는 통행증 없이 여행하던 나를 통과시켜 주기도 했다. 터키 여행에 있어서 잔다르마는 나의 암묵적인 조력자였다. 나는 그런 그들이 친구처럼 편하고 좋았다.


잔다르마의 호위를 받으며 호텔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자정을 넘은 시간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호텔 방은 화장실로 쓰이던, 그 냄새 나는 텅 빈 폐건물과는 달리 멀쩡한 지붕과 창문이 있고 안락한 침대가 있었다. 어젯밤 이후, 처음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피곤한 나머지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고 곧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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