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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Jul 19. 2022

당신들 혹시 난민이에요?

터키 9월의 어느 날 - 하자르 호수 (Lake Hazar)



“당신들 혹시 난민이에요?”


동네 꼬마가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어쩌면 꼬마의 눈에는 우리가 난민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일주일이 넘게 여기서 죽치고 생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보조바 휴양 공원에서 일주일 정도 피서를 했지만 터키 동부의 더위는 진정되지 않았다. 마틴의 제안대로 또 한 번 피서를 떠나기로 했고 그렇게 찾은 곳이 하자르 호수(Lake Hazar)였다. 키 큰 자작나무가 무성해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곳이었다. 바람이 불어오면 나뭇잎들이 흔들리며 감미로운 교향곡을 연주했다. 보조바 휴양 공원과는 달리 찾아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덕분에 쓰레기도 없었고 우리를 괴롭혔던 파리떼도 없었다. 모든 게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이곳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휴양지였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천국이라고 완벽할까? 완벽함이 갖는 아이러니란 완벽함에서 완벽함을 빼야지만 비로소 진정한 완벽함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터키의 모스크에서는 하루에 다섯 번 예배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울린다. 이 소리를 아잔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새벽 5시에 첫 번째 아잔이 울렸다. 근데 그 소리가 얼마나 우렁찬지 지진이 난다고 해도 이보다 더 요란하진 않으리라. 나는 매번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강한 살인 충동이 일었다. 그 옛날 누나가 잠을 방해했다며 나를 때렸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깨워달라고 부탁을 해놓고 나를 때렸던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안 깨우면 안 깨웠다고 때리고. 나더러 어쩌라는 건가) 누나가 그러했듯 나는 한동안 씩씩거리다가 다시 잠이 들곤 했다.


우리는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베로는 그림을 그렸고 마틴은 고향의 가족들과 밀린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그동안 미뤄왔던 캠핑용 에어매트를 고쳤다. 구멍이 무려 10개가 넘게 발견되었다. 어쩐지 자고 일어나면 항상 차가운 맨바닥에 몸을 뒹굴고 있더니만.


공원에 서식하던 들개 네 마리는 우리의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들개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음식을 나누어 먹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들개 한 마리가 베로의 신발 한쪽을 물어뜯어 걸레로 만들어 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화가 난 베로는 그날 이후 커다란 몽둥이 하나를 손에 들고 다니기 시작했고 들개와의 짧은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비록 들개처럼 온종일 공원을 어슬렁대는 우리였지만 그런 우리를 귀중한 손님으로 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즐리카는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19 여고생이었다. 그녀는 날개 없는 천사였다. 그녀는 언제부턴가 때에 맞춰 우리에게 점심 식사를 가져다주곤 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우리를 저녁 식사에도 초대해 주었다.


살짝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은 초승달이 뜬 어두운 밤이었다. 우리는 진심 어린 환대를 받았다. 나즐리카의 엄마는 너무나도 유쾌하고 친절한 분이셨다. 그녀의 미소와 배려에 첫 만남의 어색함은 홍차에 넣은 설탕처럼 금세 녹아버렸다.


푸짐한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는 밤이 깊어가도록 대화를 나누었다. 나즐리카의 외할아버지는 원통형의 사모바르(차 끓이는 주전자)에 잔가지를 넣어가며 차이를 끓였다. 그가 만들어 준 차이는 터키에서 마셨던 수많은 차이 중에서도 또렷이 기억에 남을 만큼 맛과 향이 좋았다. 우리가 çay ustas(차 장인)라고 그를 칭송하자 그는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     


나즐리카는 K-pop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한국 노래를 틀어달라며 블루투스 스피커와 연결된 자신의 핸드폰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한국 가요를 틀었다. ‘옛사랑’, ‘너에게 난 나에게 넌’ 같은 가요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에 듣는 한국 가요의 달콤한 멜로디가 공기 중으로 울려 퍼졌다. 한동안 한국 가요를 듣다가 터키 가요를 들었다. 'İrem Derici'와 'Şimdi Anladım'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서정적인 느낌의 터키 가요는 구슬프게 밤공기를 적시었다.


터키의 대중가요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 () 품은 음악이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터키인들의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며  옛날 영광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라는 감정이 숨겨져 있다. 알아들을 수는 없으나  말소리에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읊듯이 농밀하고 가슴 아리는 감정이 서려 있고 멜로디는 서양의 영향을 받았는지 상당히 세련되었다. 가수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폭발적인 가창력에서는 유목민의 기개마저 느껴진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평이지만 이 때문에 터키의 대중가요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을 갖는다. 나는 그런 터키 음악이 90년대나 2000년대 한국 음악과 묘하게 닮았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 애초에 정과 한이라면 한민족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족이 아니던가.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었다. 서로 이렇게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비슷한 느낌의 음악을 하고 있다니. 한국인도 터키인도 결국 아시아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대륙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기 때문일까? 나즐리카의 엄마는 눈을 감고 한국 음악을 음미하고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한국 음악 어때요?”라고 묻자 그녀는 "가사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감미로운 선율이 내 영혼을 편안하게 해준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았다.


나즐리카는 매년 이 시기가 되면 엄마,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함께 이곳 별장에서 여름을 보낸다고 했다.


“그럼 아빠는 어디 계시고?”


잠시 머뭇거리다 그녀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 아빠는 안 계셔. 그는 우리 가족을 버리고 집을 떠난 지 오래야.”


지나친 호기심에 괜한 걸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가슴이 아팠다. 터키 동부에서 만났던 10, 20대 여자들은 나즐리카처럼 슬픈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아버지에 의한 가정폭력과 관련이 깊었다.


터키에서 가정폭력은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매년 많은 여성이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었고 그 숫자는 증가 추세였다. 2019년에만 417명이나 되는 여성이 가정폭력으로 생을 마감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 터키 정부는 여성에 대한 폭력(할례, 강제 임신 및 강제 불임, 성폭력, 명예 살인 등)을 금지한 이스탄불 협약을 2020년 탈퇴해 버렸다. 협약의 내용이 터키의 전통적인 가족관을 파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금지하는 게 대체 어떻게 터키의 가족관을 파괴한다는 것인가. 이건 순전히 보수적인 남자들의 생각을 반영한 결과였다. 적잖은 터키 남자들은 가정폭력이 필요악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록 슬픈 순간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날 저녁 배꼽 튀어나오도록 많이 웃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품고 있는 호감과 마르지 않는 홍차는 번역기로 대화하는 번거로움을 잊게 해주었고 밤공기의 서늘함마저 녹여주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하자르 공원을 떠날 때까지 매일 아침과 저녁을 그들과 함께했다. 메네멤(달걀, 토마토, 야채를 한데 어울려 볶은 터키의 대표 음식), 화이트 치즈, 올리브 장아찌, 감자튀김 등 카발티(kahvaltı)라 불리는 터키인들의 아침 메뉴가 식탁을 가득 채웠고 매번 웃음꽃이 피어났다. 외할아버지는 변함없이 잔가지를 태우며 묵묵히 차를 끓였다. 차를 맛있게 끓이는 비결이 뭐냐고 묻자 그는 짧고 간결하게 "정성"이라고 대답했다. 한 번은 고기를 굽기도 했다. 그가 구워준 정성 가득한 고기는 차만큼이나 맛이 좋았다.


하자르 호수를 떠나는 날, 이별이 이보다 더 아쉬울 수 없었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과연 이만큼 좋은 사람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래도 터키라면, 터키이니까, 터키이기에 희망을 가득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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