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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Aug 03. 2022

굿바이, 마틴 and 베로

이별의 아픔

터키 11월의 어느 날 - 페티예



- 일주일 전 마틴은 고향 집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마틴은 고민 끝에 아르헨티나로 귀국하기로 결심했다. 마틴과 베로와 함께한 지도 어느새 삼 개월째였다. 이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지만 이리도 갑작스레 찾아올 지는 몰랐다.


우리는 웜샤워(Warmshower, 숙박과 각종 여행 정보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자전거 여행자 커뮤니티) 호스트인 리파트의 집에서 며칠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마틴이 떠나는 날이 되었다. 자정 무렵, 달라만 공항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는 그를 배웅하면서 나는 끝끝내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는 괜찮았는데, 아니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네는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글썽였고 목이 메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담담했던 마틴은 그런 나를 토닥여 주었다.     


비록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지만 나는 금세 괜찮아졌다. 마틴이 떠났다고 해도 나는 아직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는 베로가 있었다. 우리는 와인 애호가인 리파트와 밤늦게까지 와인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틴의 빈자리가 느껴질 겨를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나는 베로와의 이별 또한 앞두게 되었다.


우리는 페티예를 떠나,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10km 정도를 함께 달렸다. 나는 이즈미르와 앙카라, 흑해 연안을 거쳐서 카르스로 돌아갈 예정이었고 그녀는 워크어웨이(Workaway)를 통해 구한 근처의 농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타고 귀국할 예정이었다. 해가 저물 무렵 도착한 갈림길에서 우리는 자전거를 멈추었다. 베로가 나에게 말했다.


“두호. 여기까지인 거 같아. 그동안 너무나 즐거웠어. 정말로 고맙고 네가 무척이나 그리울 거야.”


그녀의 작별 인사에 뭐라고 대답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그녀 앞에서 나는 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다. 마틴과 헤어질 때는 어둠이 내 눈물을 가렸지만 저물어 가는 석양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철없던 시절과는 달리 미소가 되었든 눈물이 되었든 이별에 당당하게 맞서고 있었으니까.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베로 또한 눈가를 적시고 있었으니까.


베로와 나는 마지막으로 진한 포옹을 나눈 후 헤어졌다. 그녀는 나에게 이별 선물로 작은 봉투를 건넸다. 대체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을까.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나 자신이 조금 미워졌다. 베로가 먼저 발걸음을 돌렸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번 여행에서 자전거를 타고 15,000km나 달렸지만 자전거가 빠르다고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탄 자전거는 너무나도 빨리 내게서 멀어져만 갔다.


우연히 발견한 공동묘지에서 야영 준비를 마쳤을 때는 해가 완전히 저문 뒤였다. 넓은 대지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다. 주위에는 어떠한 생명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따라 귀뚜라미 울음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고 그 흔한 들개와 길고양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수많은 무덤은 음침할 정도로 고요했고 별들조차도 침묵하는 듯 하늘은 잔뜩 흐렸다.


나는 다시 이렇게 혼자가 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나 조금만 목소리를 높이면 들을 수 있는 거리에 서로의 텐트를 폈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그들의 텐트와 그 안에 있을 그들의 존재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 나는 참 든든하고 안심이 되었다. 우리가 함께할 때의 밤은 필요 이상으로 어둡지 않았고 때로는 아메리카노와 같은 달콤함마저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졌다. 모든 게 이질적이고 낯설었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베로와 헤어진 직후, 근처 마트에 들렀고 이 담배를 샀다. 스스로 피기 위해 담배를 산 건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쓰라린 담배 연기가 나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담배 연기는 내 머리를 아프게 하고 저녁을 먹지 않아 가뜩이나 비어 있는 내 속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속이 심하게 울렁거렸고 급기야 독에 감염된 것처럼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담배 한 개비도 다 피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텐트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러나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은 가시질 않았다. 텐트 안은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의 유일한 안식처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텐트 안의 좁은 세상은 나를 좁은 생각으로 가두었다. 세상에 혼자 남은 거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처량하게 흐느꼈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건 딱 한 가지였다. 내일 아침해를 다시 보는 것. 그것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 잔혹한 어둠과 고독이 끝나 있기를 기원하며 눈을 감았다.



태양이 떠올랐을 때 신기하게도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몸 상태는 가뿐했고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 여전히 마틴과 베로의 빈자리가 느껴져서 나를 서성이게 했지만 나는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나에게는 아직 가야 할 길이 있었다.


한적한 해변에 도착한 나는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태양 아래 베로가 준 봉투를 열었다. 그곳에는 우리 셋이 함께 찍은 사진 두 장이 들어 있었다. 넴루트 화산 한가운데서 찍은 사진과 지중해의 아름다운 석양을 보며 찍은 사진. 둘 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이었다. 사진과 더불어 마틴과 베로가 함께 쓴 편지 한 장도 들어 있었다. 편지를 손에 쥐고 나는 망설였다. 마음의 준비라고 해야 할까? 편지를 받고 나면 읽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나였다.  


Tofu(내 별명). 정말로 특별한 여행이었지? 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는 네가 멋진 동료가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언제나 느긋하고 살아 있다는 거 그 자체에 감사할 줄 아는 동료 말이야.

너는 타인과 자신의 공간을 구별할 줄 알았고 그와 동시에 열린 마음으로 함께 어울리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지. 우리는 네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고 너의 단순 명쾌한 삶의 방식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

(중략) 이 먼 길을 우리와 함께 달려줘서 정말로 고마워. 너와 함께 한 여행은 항상 새롭고 즐거웠고 덕분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어. 그럼 몸조심하고 또 함께 여행하자고! 적어도 60세 이전에 말이야. Abrazo.


만남과 이별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떠나간다. 여행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란 끊임없이 불어닥치는 이 만남과 이별이란 태풍에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거대한 태풍 앞에 우리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일 수밖에 없다. 만남은 언제나 새롭고 뜻밖이며 당신이 그 관계에 최선을 다했다면 이별은 언제나 아픈 것이기에.


마틴과 베로와의 이별이 그토록 슬펐던 이유는 여행 중 만난 사람들과의 이별은 한 가지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약속을 했던 간에 헤어지고 나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사실. 평생 서로 못 본다고 한다면 그건 결국 죽음과도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나는 이별의 아픔을 겪는 게 아니었다. 나는 죽음의 아픔을 겪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토록 슬펐던 것이다.


하지만 편지를 읽고 나서 이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단정 짓는 건 미래를 배신하는 일이다. 비록 삶이 녹록지 않더라도 우리는 미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결코 미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미래가 우리에게 보여줄 세상을 알지 못하기에. 생각지도 못한 밝은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나는 언젠가 마틴과 베로를 다시 볼 날을 꿈꿨다. 적어도 60세 이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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