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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Aug 07. 2022

어디선가 총소리가 울리고

여기는 위험해. 늑대가 출몰하는 곳이라고.

터키 11월의 어느 날 - 보야바트



- 보야바트를 지나 어느 호젓한 강 근처에서 야영을 준비 중이었다.


“탕탕탕!”

어디선가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소리의 크기로 보아 발음지는 여기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거 같았지만 익숙지 않은 소리는 나를 긴장시켰다. 문득 오늘 도로변에서 보았던 예사롭지 않은 장면들이 떠올랐다. 콩알만 한 구멍으로 벌집이 된 도로 표지판 그리고 길바닥에 떨어져 있던 금색의 탄피. 나는 쉽게 볼 수 없는 탄피를 발견했다고 사슴처럼 폴짝 뛰며 좋아했더랬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건 결코 좋아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모든 상황이 한 가지 무서운 사실을 암시하고 있었다.


‘누군가 총을 쏘고 있다!’


시골에 사는 터키 사람들은 늑대나 멧돼지와 같은 야생 동물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총을 소유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터키에서는 전 국민의 18%에 가까운, 무려 천 오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합법 또는 불법적으로 총을 소유하고 있다고 나타났다.


세상의 모든 게 그러하듯 문제는 역시 총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인데 터키 사람들의 모양새가 심상찮다. 그들은 심심풀이로 도로 표지판에 총을 쏴대거나 결혼식 따위에서 축하의 의미로 총을 발포한다. 그러다 보니 간혹가다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2010년 터키 남동부에서 있었던 한 결혼식에서는 신랑이 총을 쏘다가 실수로 사람들을 쏘았다. 그 결과, 그의 아버지와 두 명의 고모가 죽는 비극이 일어났다. 2019년에는 한 대학생이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하는 자신을 고발했던 한 강사에게 분노한 나머지, 아버지의 피스톨을 훔쳐 대학교에서 강의 중인 강사를 쏴 죽였다.     


지금 이 총소리가 짐승을 향했듯, 표지판을 향했듯, 아니면 사람을 향했듯 나에게는 결코 반갑게 들리지 않았다. 나는 모닥불을 피우려다가 생각을 접고 텐트 안에 누웠다. 한밤중에 불빛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철저하게 혼자이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하늘 아래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조디악 킬러’ 같은 남자가 나타나 나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일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고 싶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태양과도 같은 환한 불빛이 내 텐트를 비추었다. 덜덜덜 엔진이 돌아가는 기계음이 들려오고 불빛은 곧 내 텐트를 완전히 뒤덮어버렸다. 제발 그냥 좀 가라, 라고 기원하며 잠시 텐트 안에서 버텨 보지만 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렇게 된 이상 밖으로 안 나갈 재간이 없다.


밖에는 커다란 트랙터 한 대와 아저씨 한 명이 서 있었다. 트랙터 전조등이 내 눈을 멀게 하고 있어서 그의 모습이 잘 보이질 않았다. 내 관심사는 딱 하나였다. 이 아저씨가 총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그가 내게 물었다.


“너 여기서 뭐 해?”
“저 자전거 여행 중인데 여기서 하룻밤 머물다 가려고요. 괜찮겠죠?”
“여기서 야영하면 안 돼. 나를 따라와.”


다행히도 그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를 따라갈 아무런 까닭이 없었다. 약간 미심쩍어 보이기도 했고 차라리 총을 맞으면 맞았지, 오밤중에 이 많은 짐을 다시 정리하는 수고를 들이고 싶진 않았다. 아저씨는 덧붙여 말했다.


“여기는 위험해. 늑대가 출몰하는 곳이라고.”


까짓것 곰도 아니고 늑대 정도야. 차라리 늑대한테 물리면 물렸지, 오밤중에 슬리핑 매트리스를 접고 침낭을 접고 텐트를 접고 하는 일은 진짜 하기 싫다. 어디 그것뿐이랴. 텐트 안팎에 흐트러뜨려 놓은 옷가지, 세면도구, 물통, 전자기기 등 온갖 짐을 가방에 순서대로 넣고(순서대로 넣지 않으면 다 안 들어간다) 떠날 준비를 마치는데 족히 20분은 걸린다. 아저씨가 다시 말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내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어. 거기 가서 같이 밥 먹자.”


밥 먹자, 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곧바로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혹시나 아저씨가 기다리다 지쳐 나를 두고 떠날까봐 걱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10분이 채 안 되어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아저씨의 트랙터를 따라간 곳에는 작고 허름한 건물 한 채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여섯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서 식사를 시작하려는 찰나였다. 옳거니, 기가 막힌 타이밍이로구나. 테이블 위에는 에크맥과 생선튀김 그리고 토마토와 오이, 양파를 버무린 샐러드가 차려져 있었다. 살이 우유처럼 하얀 생선튀김은 담백하고 짭조름한 게 아주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난로 주변에 둘러앉아 차이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상했던 대로 나에게 질문 공세가 쏟아지고 나는 내가 아는 모든 터키어와 번역기를 활용하여 성실하게 대답했다. 그러는 사이에 새로운 지역 주민이 나타났다. 트랙터 아저씨는 그에게 우리가 만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송강호의 연기 뺨치도록 아주 실감 나게 얘기했다. 말을 알아듣진 못해도 자전거 어쩌고저쩌고 텐트 어쩌고저쩌고 늑대 어쩌고저쩌고하는 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불 보듯 뻔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고 트랙터 아저씨는 지겹지도 않은지 했던 얘기를 다시 처음부터 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무려 세 번이나 반복되었다. 이야기의 마침표가 찍힐 때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보며 박수를 쳐댔다. 나는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아저씨. 제발 그만 좀 하세요.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동네방네 다 소문을 내시나요.’


어쩌면 고작 70명밖에 살지 않는다는 이 아담한 마을에서는, 이곳에서 약 7,000km 넘게 떨어진 곳에서 온 여행자의 존재 자체가 큰 화젯거리일지도 모르겠다. 부끄럽긴 해도 나의 존재로 사람들에게 소소한 기쁨 또는 놀라움을 주었다면 그걸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만이 내가 그들의 호의에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사실 보답할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그건 여기로 장가오는 .  주변에서 땅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는 아저씨는  또래의 자기 딸을 나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여기서 잠깐!  또래라는 말을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털로 뒤덮인 터키 사람들은 털이 있어봤자 솜털인 나를 고등학생 내지 이제  성인이  남자로 착각하곤 했다. 그래서 그들의 기준에서나  또래이지 그녀는 나보다 훨씬 어릴  분명했다.


히잡을   딸이라는 여성은 수줍어서 고개를 돌리고 나도 머쓱해서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면서도 매의 눈으로 그녀를 몰래 살펴보았다. 터키 여인들의 눈은 무척이나 매혹적이다. 그들 깊고 검은 눈동자를 가졌다. 그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자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정신이 혼미해진다.  여성의 눈동자도 그랬다. 나는 지금 당장 결혼식을 올려도 좋을  같았다.


 아저씨가 진심을 말한 건지 짓궂은 장난을  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심중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넘게 여행하면서 ‘비포 선라이즈같은 뜨겁고 달콤한 로맨스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던가! 가끔은  여정에서  인생의 동반자가  사람을 만나는 꿈을 꾸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딸을 둔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은 다 똑같다. 터키의 부모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딸이 만나는 남자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남자가 집이 없거나 충분한 지참금이 없는 등 신부를 맞을 경제적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단호하게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사랑에 눈이  남자는 물불  가리는 . 남자는 최후의 수단으로써 눈이 맞은 여자와 야반도주를 했다. 감히 금지옥엽 키운  딸을 꼬드겨 도망을 ! 여자의 부모로서는 천인공노할 만한 일이었지만 그렇게 남자와 야반도주한 여자는 순결을 잃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고서는 사회생활을 하기가 어려웠고 부모는 울며 겨자 먹기로 결혼을 허락하곤 했다.


그렇다면 내가  파렴치한이 되어 보는  어떨까? 현재로서 집도 돈도 직장도 없는 내게 이것만이 유일하게 결혼할 수 있는 길이니까. 어디로든 도망가서 결혼하고 애를 다섯 명쯤 낳은 후에 여기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럼  아저씨는 '  줄까?'라고 농담한  후회하며 나를   죽이거나 또는 이제라도 지참금을 받고 가족으로 맞아주거나   하나겠지.

  

나는 잠시 혼자만의 환상에 젖었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혹시 한국으로 도망쳐서 서로 진실로 사랑한다 한들 여자가 행복할 거 같지 않다. 여자 입장에서는 말도 안 통하고 문화와 음식도 다를뿐더러 이슬람이나 히잡은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니. 사랑에는 조건이 없지만 살아가는 데는 많은 조건이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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