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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Aug 13. 2022

설국 버스

터키 12월의 어느 날 - 호파 ~ 카르스



- 흑해는 지중해처럼 낭만적인 바다가 아니었다. 이곳에는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수려한 경치도, 넓고 아름다운 모래사장도, 소나무가 무성한 휴양림도 없었다. 대신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는 D101 간선도로와 성난 파도를 막기 위한 방파제, 볼품없는 작은 포구, 무수히 많은 터널이 있을 뿐이었다. 날씨가 화창하다고 생각한 건 내 착각이었다. 피가 끓어오른다는 터키인처럼 급변하는 흑해의 날씨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흐리고, 그러다가도 맑아지고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흑해의 특산물 함시(멸치과 생선의 한 종류) 케밥은 이스탄불의 고등어 케밥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맛있었다. 얼핏 무뚝뚝해 보이는 지역 주민들은 심심찮게 내게 따뜻한 호의를 베풀어 주었다. 이 지방 사람들의 두터운 신앙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흑해 주변에는 모스크가 유독 많았다. 매일 밤 나는 아무도 없는 모스크의 카펫 위에서 곤히 잠이 들곤 했다.



나는 흑해 연안의 가장 번성한 도시 트라브존, 1,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수멜라 수도원, 터키 차이의 고향 리제, 터키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아이델 등을 지나 호파에 도착했다. 호파에서 폰투스 산맥을 넘어 아나톨리아 고원의 카르스로 넘어가는 길은 터키에서 가장 위험하고 험한 길 중 하나이다. 겨울이라 아마 눈도 엄청나게 쌓여 있겠지. 자전거 여행자 중에는 한겨울에 눈으로 덮인 시베리아를 횡단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변태들도 많지만 나는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나는 미련 없이 카르스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돌무쉬(터키의 마을 버스)처럼 생긴 작은 버스는 코루 강을 따라 달렸다.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하이웨이는 자전거 여행자에게 있어 꼭 가보고 싶은 꿈의 장소이다. 이곳은 꼭 파미르 하이웨이의 축소판 같았다. 강물이 가득한 골짜기를 빼곡하게 메운 산들은 험준하다 못해 위험천만해 보였고 천 길 낭떠러지의 아슬아슬한 절벽은 내 가슴을 싸하게 만들었다. 물이 풍부하고 교목과 골풀도 적지 않았지만 겨울이라서 그런지 풍경은 메말라 보였다. 그러나 파미르 하이웨이가 그렇듯 이곳도 그 모습 그대로 절경이었다. 나는 창문에 코를 박고 이 모든 걸 단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다는 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폰투스 산맥을 넘기까지 버스는 수십 개의 길고 짧은 터널과 높디높은 다리를 지났다. 이토록 험악한 산맥에 송곳으로 종이 뚫듯 구멍을 내고 수십 미터 높이의 단단한 교각을 세우더니 심지어는 여기저기 댐까지 건설 중이었다. 산 전체에 먼지가 뒤덮인 댐 건설 현장에는 엄청난 수의 인부들과 중장비, 제반 시설이 가득했다. '피터 브뤼겔'의 그림 '바벨탑'을 연상시키는 이 거대한 토목 공사는 꼭 인간에게 불가능이란 없음을 말하고 있는 거 같았다.



마침내 폰투스 산맥을 넘어 아나톨리아 고원에 당도한 나는 뜻밖의 풍경을 마주했다. 그건 정말이지 소설 ‘설국’의 유명한 첫 문장이 생각날 정도로 마법과도 같은 변화였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여 있었다. 높이 올라갈수록 눈의 밀도가 더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2,100m의 고지를 지날 때는 그야말로 하얀 도화지 같은 순백의 세상이 나타났다.


이런 풍경은 아마 내 평생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눈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무와 풀이 사라지고 이차선도로의 차선마저 사라져 버스는 이제 감각에 의존하며 달리고 있었다. 약하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등 날씨가 흐려서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했다. 생명의 흔적 따윈 없었다. 산이나 돌, 흙과 같은 무생물조차도 이 많은 눈앞에 그 존재감이 희미해진 거 같았다. 구별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도로를 따라서 길게 늘어진 전봇대와 전선뿐이었다.


고도를 좀 낮추자 사람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했다. 들판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농부의 집은 이미 절반 이상 눈에 파묻혀 있었다. 집으로 이어지는 길은 눈에 점령당해 집과 그 주변만이 겨우 세상에 고개를 빼꼼 내민 형국이었다. 널찍한 마당에는 겨우내 가축에게 먹일 건초더미와 땔감, 소똥을 말린 고체연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빨랫줄에는 빨래가 널려 있었는데 과연 이런 날씨에 저게 마르기는커녕 더 젖지는 않을지 의문이었다. 이런 곳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지만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나오는 연기가 삶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 모든 걸 바라보며 나는 마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끌려 가는 기분. 버스 안에는 주기적으로 엔진 소리와 버스가 흔들리는 소리가 들릴 뿐 무거운 침묵이 깔려있었다. 승객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자신만의 상념에 젖은 채 창문 너머로 이 압도적인 광경을 바라보았다. 오직 한 사람, 방금 운전을 교대한 버스 기사만이 아기처럼 쌕쌕 자고 있었다.


사 개월 만에 돌아온 카르스는 내가 알던 카르스가 아니었다. 눈으로 덮인 이 도시는 여름날의 카르스와는 풍경도 분위기도 너무나도 달랐다. 나는 지난날 수없이 걸었던 이 거리를 마치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처럼 조심스레 걸어야 했다. 왠지 모르게 낯설기도 했지만 자전거를 끌면서 눈과 얼음, 물웅덩이, 먼지 등으로 엉망진창이 된 거리를 걷는 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괴즐레메(얇은 밀가루 반죽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익혀낸 터키의 길거리 음식, 전과 비슷함)와 바클라바, 해바라기 씨앗, 그리고 음료수를 샀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투르크메니스탄 친구들에게 줄 선물이었다. 내 마음은 설렘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들은 과연 나를 반겨줄 것인가. 사실 따뜻하게 환대해 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들이니까.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사람 관계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함께 있으면 고운 정이든 미운 정이든 서로 가까워지지만 떨어지고 나면 아주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멀어지고 마는.


30여 분을 걸어서 도착한 아파트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지난여름, 이스탄불 등으로 일을 하러 떠났던 친구들은 겨울을 맞아 모두 이곳에 돌아와 있었다. 나는 투르크메니스탄 인사법으로 한 명 한 명과 뺨을 좌우로 교차하며 가볍게 포옹을 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극적인 환대는 없었다. 투르크메니스탄 친구들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다소 무덤덤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 점이 왠지 나를 더 안심케 했다.


  만에 하는 목욕을 끝내고 나와 보니 친구들은 거실에 모여 차이와 함께 해바라기 씨앗을 까먹고 있었다. 일부 터키 사람들은 해바라기 씨앗을 ‘가난한 사람들의 마약’이라 부르며 폄하한다.   없는 사람들이나 온종일 앉아서 해바라기 씨앗을 까먹고 있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라디에이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사람들의 온기  친구들과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며 해바라기 씨앗을 까먹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영하 10 가까이 떨어진 바깥세상에는 어느새인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그립던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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