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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호 Aug 20. 2022

조지아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터키 5월의 어느 날 - 카르스 ~ 에르주룸 ~ 리제




-  눈의 왕국 카르스의 겨울은 예상했던 대로 무척이나 추웠다. 1월이 되자 최저기온이 영하 30도 가까이 떨어지는 나날이 이어졌다. 날씨가 이렇게 춥다 보니 집 안의 유일한 난방 기구인 라디에이터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나는 한밤중에 한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다시금 이불의 매무새를 고쳤고 너무 추우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침낭을 꺼내 그 속에 파묻혀 잠이 들었다.


나는 오밤중에 마법과 같은 힘에 이끌려 졸린 눈을 비벼가며 창문 커튼을 열어젖히곤 했다. 바깥에는 소리소문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카르스의 눈은 가랑눈처럼 입자가 작고 가늘었다. 이곳에서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이렇게 눈이 왔다. 일단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그건 세상을 하얗게 물들일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온 세상이 하얬다. 아직 사람의 때를 타지 않은, 아침햇살에 비친 눈은 알프스에서 봤던 그것처럼 너무나도 깨끗하고 순결해 보였다.


4월이 되자 카르스의 눈이 녹기 시작했다. 눈이 쌓여있던 자리에는 봄소식을 알리려는 듯 푸르른 잔디가 솟아났다. 5월로 접어들자 산꼭대기에 남아 있던 마지막 눈까지 녹았다. 그에 따라 눈으로 인해 막혔던 길이 열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국경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그리고 내 여비는 슬슬 바닥을 보였다. 이제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도 가는 데 필요한 여비도 마땅치 않은 상황.


'그래, 집으로 돌아가자. 이만큼 했으면 충분해.
아쉽지만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겠다는 계획은 다음으로 미루자.'


그렇게 나는 마침내 카르스를, 터키를 떠나기로 했다.


카르스를 떠나기 하루 전, 나는 카르스 성에 올라 이 도시에 작별 인사를 고했다. 지난해 4월, 카르스에 도착했을 때 이 외딴 도시에서 9개월이나 지내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흘러가는 대로 달리다 보니 이곳에 와 있었고, 흘러가는 대로 지내다 보니 친구도 생기고 소중한 경험도 하게 되었다. 여행에는 과연 정답이란 게 없었다. 만약 그런 게 있다고 한다면 그건 여행은 조절하고, 적응하며, 받아들이는 것의 연속이라는 점이었다.



아침 일찍 떠날 예정이었기에 그날 밤 투르크메니스탄 친구들과도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바이람은 이별을 특히 아쉬워했다. 그는 내가 자전거로 지나가게 될 사리카미스란 마을 근처에 최근 곰이 출몰해 사람을 공격한다면서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그가 보여준 동영상에는 거대한 불곰 한 마리가 자전거를 타고 도망가는 사람을 무섭게 쫓아가고 있었다. 바이람은 귀신에 홀린 듯 그 동영상을 수없이 돌려보았다. 한동안 집 안에서 곰에게 쫓기는 남자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다행히 곰의 습격은 없었고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내 여정은 순조로웠다. 그리고 에르주룸을 지나는 도중, 나는 기적과도 같은 뉴스를 접했다.


‘조지아 정부, 6월 1일부터 특정 국가의 여권을 가진 자에 한해 국경을 개방하기로.’


나는 필요한 서류나 조건 등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리고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확신에 찬 결론을 내렸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무려 일 년 넘게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 기다리다 지쳐서 마침내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이렇게 길이 열리다니. 신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조지아를 여행할 수 있다면 이제는 미련 없이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단,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총 세 개의 터키-조지아 육로 국경 중 오직 흑해의 작은 마을 Sarp에 있는 국경만이 개방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폰투스 산맥을 넘어야 했다. 지도를 보니 거리 210km, 최고 해발 3,200m의 고지를 지나가는 길고 험한 산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지역에는 곰과 늑대, 멧돼지 등 위험한 야생 동물도 폭넓게 서식했다.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세상에는 마지막 남은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일을 그르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 모든 장애물은 에르주룸을 떠난 지 이튿날 아침, 마법처럼 해결되었다.


산길을 오르고 있는데 트럭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매년 수만 명씩 사라지는 미국의 텍사스나 호주의 아웃백 같은 곳에서는 차가 갑자기 멈추면 긴장부터 해야 한다. 하지만 터키는 다르다.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자전거를 짐칸에 던지고 좌석에 몸을 날렸다. 차에 누가 타고 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어차피 순박하고 여자를 밝히는 털북숭이 남자들이 앉아 있겠지.


모든 게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고 험한 산도 무서운 야생 동물도 몇 시간 후면 영원히 안녕이었다. 그러나 편하게 갈 생각에 눈이 멀었던 걸까. 나는 어떤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만다. 그건 터키의 트럭 운전사들은 외국인을 보면 매우 흥분한다는 점과 그들이 흥분하면 안 그래도 지랄 같은 운전을 더더욱 지랄 같이 한다는 점.


트럭은 험준한 산맥의 벼랑길을 쏜살같이 달렸다. 코너를 돌 때마다 트럭은 격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좌우로 출렁거렸다. 우리도 트럭과 함께 출렁였지만 그 누구도 안전띠를 맬 생각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영상통화를 걸어 나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는가 하면, 담배를 피워대고, 종국에는 스피커가 터져라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부르며 몸을 들썩거렸다. 나는 웃고 있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차라리 일주일이 걸리든 일 년이 걸리든, 곰을 만나든 용을 만나든 자전거를 타고 가야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벼랑 끝에서 추락해서 비명횡사하는 위험에서만큼은 벗어났을 테니까.


우리네 인생 중 가장 신나는 일은 죽을 만큼 무서운 일을 경험하는 거라고 '로알드 달'이 말했던가. 30분 같은 3시간이 지나고 트럭은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건축 자재를 운반하던 트럭이 멈춘 곳은 어느 공사 현장이었고 그곳에서 정상까지는 불과 2k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정상에는 터널 하나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터널 표지판을 본 순간 나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세상에나, 터널 길이가 14,000m라고? 숫자에 약한 터키 사람들이 0을 하나 잘못 붙인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건 틀림없이 14,000m였다. 아나톨리아 고원과 흑해를 잇는 이 Ovit 터널은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는 터널로서는 터키에서 가장 긴 터널이자, 세계에서 8번째로 긴 터널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터널을 지나는 건 최악이다. 터널 안은 어둡고 시끄럽고 더럽고 답답하고 위험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자전거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보도가 있었다는 점. 하지만 이런 곳을 지나가는 정신 나간 사람은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을 처음 본다는 듯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생쥐들이 이를 알려주었다. 지나가는 차량, 특히 화물 트럭의 굉음은 터널 안에서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깊고 어두운 터널 안으로 들어갈수록 그 굉음은 더욱 심해져서 내 고막은 터질 것만 같았다.


간신히 터널에서 탈출하자 내 앞에 새로운 세상이 나타났다. 건조하고 황량한 아나톨리아 고원과 달리 흑해 지방은 습하고 녹음으로 울창했다. 바다에서 밀려온 수증기가 산중에 잔뜩 응집해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비가 오진 않겠지.


아니나 다를까, 머지않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비는 터키에 와서 본 적이 없다. 나는 한동안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야 했고 간신히 피난처를 찾았을 즈음에는 속옷까지 몽땅 젖고 말았다. 신들의 고향 조지아로 가는 길은 과연 멀고도 험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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