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미모의 여성입니다. 물론 미는 사람의 성별을 가리는 개념이 아니기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남성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먼저 아름다운 여성, 그중에서도 ‘팜므파탈’에 대해 먼저 살펴볼까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팜므파탈은 매혹적인 외모로 남성을 유혹하여 파멸시키는 여성을 뜻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초래하는 상대 남성(들)의 파멸에 고의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위대한 개츠비>에는 데이지 뷰캐넌이라는 팜므파탈이 나옵니다. 그녀의 팜므파탈로서의 성격이 어떠한지는 책을 같이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가볍게 이 책의 줄거리를 살펴보겠습니다.
닉 캐러웨이는 정직하고도 성실한 사람으로서 미국 중서부에 살다가 동부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는 마찬가지로 동부에 이사 온 사촌 데이지를 만납니다. 데이지는 부유한 상류계층인 톰 뷰캐넌이라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살고 있었죠. 한편 닉은 한 신흥 부자를 알게 되는데, 그가 바로 제이 개츠비입니다. 개츠비는 5년 전에 데이지와 사랑에 빠졌지만 가난해서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개츠비는 이를 악물고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다시 데이지 앞에 나타납니다. 닉의 소개로 둘은 만나게 되고 다시 사랑에 빠집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톰과 이혼하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낭만적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를 완전히 번복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한편 데이지의 남편인 톰은 가진 돈은 많지만 이전에 스포츠에서 누리던 성공을 놓침으로써 피해의식에 빠져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한 정부와 대놓고 바람을 피우고 있습니다. 데이지 또한 그 사실을 알지만 지금까지 묵인해 왔습니다. 하지만 톰은 자신이 한 일과는 상관없이, 데이지가 개츠비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분노합니다.
다 함께 간 나들이에서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집니다. 개츠비는 “데이지는 당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며 톰에게 그녀를 놓아달라고 하지만, 데이지는 과거에 톰을 사랑한 적이 있다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개츠비는 큰 충격을 받죠. 톰의 폭로로, 개츠비가 정정당당하게 돈을 번 것이 아니라 사기행각을 통해 돈을 벌었다는 것을 알게 된 데이지도 큰 충격을 받습니다. 데이지와 개츠비는 끔찍했던 나들이에서 돌아오다가 톰의 정부를 차로 칩니다. 그때 운전을 하고 있던 것은 데이지였죠.
개츠비는 그녀 대신 죄를 뒤집어쓸 것이라고 닉에게 말합니다. 닉은 개츠비의 사랑에 감동해서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당신이 더 훌륭하다고 말하죠. 한편 정부를 잃은 톰은 슬퍼하며 복수심에 불탑니다. 죽은 정부에게도 남편이 있었는데 그는 조금 모자란 사람입니다. 톰은 그녀의 남편에게, 그녀는 개츠비와 바람을 피웠으며 개츠비가 이를 비밀로 간직하기 위해 그녀를 차로 치었다고 말합니다. 분노에 불타던 남편은 개츠비의 집으로 가서 풀장에 있는 그를 총으로 쏴 죽입니다. 허무한 죽음이었죠.
개츠비가 알던 수많은 사람들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개츠비의 진실한 친구가 된 닉 캐러웨이가 그의 친구들을 불러 모으려고 했지만, 불법적인 일을 하던 개츠비에게 닉 외에 진정한 친구란 없었죠. 닉과 개츠비의 아버지, 그리고 올빼미 안경을 쓴 한 남자만이 개츠비의 장례식을 지킵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남편에게 들어서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정부를 죽인 진짜 범인인 데이지 또한 남편과 이사를 가버립니다. 주소조차 남기지 않고 도망칩니다. 쓸쓸한 그의 장례식에서, 올빼미 안경을 쓴 남자가 안타깝다는 듯이 내뱉습니다. “불쌍한 놈.”
효율적이지만 비효과적인 삶
팜므파탈인 데이지에 대해 말하기 이전에, 개츠비에 대해서 말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상 이 책은 오로지 개츠비를 위한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가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잘못된 사람을 사랑했고 억울한 죽음을 맞았다는 측면에서가 아닙니다. 그런 결과를 맞게 된 원인이 문제입니다. 그 원인은 그가 매우 효율적인 사람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다지 효과적인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효율이 ‘관리’와 관계가 있다면, 효과는 ‘리더십’과 관계가 있는 개념입니다. 효율은 그 목적 또는 목표를 잘 수행하는 행위고, 리더십은 애초에 목적 또는 목표를 잘 세우는 것입니다. 개츠비는 목표를 성취하는 데에는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정작 최선의 목표를 선택하는 데에는 무지했습니다. 데이지는 그가 동경했던 상류층의 삶을 그대로 표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름답고 재치 있고 고상했지요. 그래서 그는 데이지를 삶의 제1 목표, 최고의 목적으로 두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두 번째 단계 상태를 지나 이제 세 번째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했다가 그다음에는 어쩔 줄 모르고 기뻐하는 단계를 지나 지금은 그녀가 자기 앞에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그 생각에만 몰두하고 끝까지 그것만을 꿈꾸어 왔으며, 말하자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를 악물고 긴장한 상태로 기다려왔던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134p
그러나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고 결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은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이지 경외하며 숭배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정도가 지나쳐 숭배하는 것으로 이어진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개츠비는 영원히 아름답고 매혹적인 천상의 존재로 데이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데이지도 언젠가는 늙고, 더 이상 아름답지 않게 되고, 마침내 죽음을 맞이할 한낱 인간일 뿐입니다. 데이지는 과연 개츠비의 사랑이 부담스럽지 않았을까요? 언젠가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실망할 것이 분명한데 말입니다.
심지어 그날 오후에도 데이지가 그의 꿈에 미치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그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가 품어온 환상의 거대한 힘 때문에 말이다. 그 환상의 힘은 그녀를 초월하였으며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그는 창조적인 열정으로 직접 그 환상에 뛰어들어 그 환상을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게 했으며, 자신의 길 앞에 떠도는 온갖 빛나는 깃털로 그 환상을 장식했던 것이다. -같은 책, 139p
개츠비가 데이지를 위해 돈을 모은 방식도 문제입니다. 그는 데이지를 위해서라도 부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재산을 모으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법 채권과 밀주업으로 재산을 불립니다. 그리고 그는 데이지에게 접근하기 위해 매우 사치스럽고 향락적인 삶을 영유했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과대포장하기도 했습니다. 조작된 그의 삶은 거짓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의 안에 유일하게 순수한 것이 있다면 데이지에 대한 경애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데이지가 그러한 마음에 감사할 순 있겠지만, 모든 것이 거짓인 이런 사람과 진심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당신의 ‘약국’이라는 게 뭔지 알아냈소.” 그는 우리를 향해 재빨리 말했다. “이 사람과 그 울프 심이라는 작자가 이곳과 시카고의 뒷골목 약국을 여러 곳 사들여 에틸알코올을 판 거요. 그게 저 친구의 작은 재주 중 하나지. 난 저 친구를 처음 봤을 때부터 밀주업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 틀린 게 아니었어.” …(중략)…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흥분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아직 나오지 않은 비난에 대해서까지 자신을 변명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말을 하면 할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안으로 움츠러들었고, 그래서 결국 그는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오후 해가 뉘엿뉘엿 점점 기울어가는 동안 깨어진 꿈만이 계속 다투고 있었다. -같은 책, 190-2p
그래서, 저는 저자 피츠제럴드의 생각과는 달리, 개츠비와 그의 삶은 그다지 위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목적이 훌륭해도 수단이 적법하지 않으면 정의롭다고 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단이 아무리 훌륭해도 목적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면 이상한 방향으로 갈 뿐입니다. 데이지에 대한 헌신적 사랑과, 희망을 현실로 바꾸는 낙관적 힘은 분명 개츠비의 훌륭한 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점이 개츠비의 어리석음을 덮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떤 점에서 돈키호테와 닮아 있습니다. 가짜 기사 돈키호테도, 하는 행동은 기사도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다만 그가 기사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였죠. 돈키호테가 기사문학에 빠져서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듯이, 개츠비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돈키호테와 개츠비는 꿈을 향한 강력한 추진력이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꿈을 바르게 설정하는 법은 잘 몰랐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허한 아름다움
데이지는 율동적이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리듬을 타며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의 의미를 하나하나 음미하며 노래를 부르는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멜로디가 높아지면 그녀도 콘트랄토 가수들이 그러듯 감미롭게 살짝 멈췄다가 다시 부르곤 했다. 이렇게 변화가 생길 때마다 그녀가 발산하는 따뜻하고 인간적인 마력이 공기 속으로 조금씩 퍼져나갔다. -같은 책, 157p
이제 아름다운 데이지 얘기를 해볼까요. <위대한 개츠비> 속에서 데이지는 사실 그다지 주도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작품 속에서 데이지의 목소리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논문들도 존재할 정도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개츠비의 공허한 희생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장치로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입니다. 팜므파탈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인데, 악의적이고도 고의적으로 상대 남자의 파멸을 주도하는 팜므파탈이 있고, 수동적으로 상황에 끌려가면서 상대의 파멸을 야기하는 또 다른 팜므파탈이 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이기 때문에, 비록 악의가 없더라도 상대를 잘못된 상황으로 이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강력한 힘을 지닌 자가, 스스로의 삶에 주도적이지 않으면, 오히려 그 힘에 휘둘리는 사태가 만들어지겠지요. 경국지색, 미인박명 등이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위의 한자성어에서 보듯, 수동적인 팜므파탈은 상대와 자기 자신의 공멸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데이지의 단점을 꼽자면 무엇보다 비겁하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겁니다. 남편의 정부를 알면서도 돈 때문에 이혼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 남편이 있는데도 개츠비와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것도 그렇고, 개츠비를 사랑하면서도 남편을 한때는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솔직하다고 평할 수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아니었지요.
“아, 당신은 너무 많은 것을 원해요!” 그녀가 개츠비에게 소리쳤다. “지금 난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요? 과거는 어쩔 수 없잖아요.” 그녀는 절망적으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저 사람을 한 번쯤은 사랑했단 말이에요……. 하지만 당신도 사랑했어요.”
개츠비는 눈을 번쩍 떴다 감았다.
“나도 사랑했다고?” 그가 그녀의 말을 되풀이했다.
“그것도 거짓말이야.” 톰이 무자비하게 말했다. “그녀는 당신이 살아있는지조차 몰랐소. 어쨌든…… 데이지와 나 사이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일들이 있소. 우리 두 사람이 영원히 잊지 못할 일들 말이오.”
그가 내뱉는 말이 개츠비의 몸을 물어뜯는 듯했다. -같은 책, 189p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츠비가 자신의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죽었음을 알면서도, 장례식장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 그렇습니다. 남편인 톰이 극렬한 반대도 했겠고, 개츠비와 엮이면 살인죄에 대한 의심을 다시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겠지만, 한때 그토록 사랑한 사람의 마지막 길조차 배웅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위해 죽은 사람인데 말입니다. 데이지는 운 좋게도 개츠비와의 공멸을 피해 갔습니다만, 그 비겁한 선택이 그녀에게 행복을 선사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개츠비가 죽기 전까지는 아무도 데이지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완전히 회피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도리를 어기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아름다움은 때로 선함의 옷을 빌려 입습니다. 그러나 그 옷이 진정 자신의 것은 아닐 때가 있죠. 아름답고 매력적인 데이지는 그 미모로 인해 천사 같다고 칭함을 자주 받습니다만, 그녀는 천사와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톰처럼 잔혹하지는 않지만, 사실상 이기적인 악당이었습니다.
톰과 데이지, 그들은 경솔한 인간이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부숴 버리고 난 뒤 돈이나 엄청난 무관심 또는 자기들을 한데 묶어주는 것이 무엇이든 그 뒤로 물러나서는 자기들이 만들어낸 쓰레기를 다른 사람들이 말끔히 치우도록 했던 것이다……. -같은 책, 251p
아름다움은 그릇이다
결론적으로, 개츠비는 철저히 잘못된 선택을 내렸습니다. 그는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상대에게 전적인 헌신과 숭배를 바쳤습니다. 그의 죽음은 어찌 보면 데이지를 사랑하겠다는 그의 의도와 배치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죽음으로 자신의 이상이었던 데이지를 지킨 겁니다. 그 대가로 받아야 할 그 무엇도 받지 못한 채 말이죠. 피츠제럴드는 그의 낙관적인 마음과 실행력, 그리고 순정을 위대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지도에도 없는 목적지를 가려하는 항해를 위대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개츠비는 진정한 데이지가 아닌, 그의 이상과 환상 속의 누군가를 사랑했고, 비극적 죽음을 맞았습니다. 데이지를 얻기 위한 모험으로 가득 찬 그의 삶이 낭만적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그의 죽음까지 낭만적이진 않았습니다.
아름다움은 사람이 이상향을 그릴 때 빠지지 않는 조각입니다. 개츠비는 아름다운 데이지가 있는 가정을 꿈꾸었죠. 때로는 그 겉보기로의 아름다움이 모든 것인 양 보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데이지의 아름다움은 결국 누구도 좋게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아름다움은 남을 기쁘게 할 때 그 가치를 비로소 발휘하지만, 데이지의 아름다움은 누구도 이롭게 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이었죠. 이렇듯 아름다움은 분명 강한 힘이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그릇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느냐가 가장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 담겨있을 때 가장 가치 있는 내용물은 무엇일까요? 생각해 볼 만한 문제 같습니다.
다음은 공평하게 옴므 파탈의 차례입니다. 아름다운 남자라는 뜻의 <벨아미>라는 작품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