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드 모파상의 <벨아미>
저번 글에서는 주어진 상황 속에 수동적이지만, 상대를 완전히 파멸시켰던 팜므파탈 데이지 뷰캐넌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모든 상황을 자신의 뜻대로 좌우하는 데에 매우 능숙한 옴므 파탈 한 명을 살펴보려 합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사랑을 나눈 여자들을 밟고 올라가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진짜 악당이지요. 기 드 모파상의 작품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남자, 일명 벨아미라고 불리는 조르주 뒤루아를 살펴보겠습니다.
여자들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악당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퇴역 군인이자 뛰어난 미남인 조르주 뒤루아는 철도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경제적 수입이 너무 적어 괴로워합니다. 만약 기회가 온다면 그는 반드시 그 기회를 잡아 출세할 생각입니다. 또한 그에게는 아름다운 여성과의 사랑에 대한 욕망도 가득합니다. 하지만 땡전 한 푼 없는 그에게 여성을 만나는 것은 꽤 힘든 일이지요. 여러 가지로 좌절스러운 가운데 그는 우연히 옛 친구 포레스티에를 만나게 됩니다. 포레스티에는 신문사에서 정치부장을 맡고 있었는데, 뒤루아를 신문 기자로 추천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내를 소개하지요. 현명한 그녀는 남편의 기사 작성을 도와 그의 출세를 도모하는 재간꾼입니다. 용모도 아름다운 그녀에게 뒤루아는 반하고 맙니다. 그러나 타고난 바람둥이인 그의 사랑은 결코 일편단심이 아니지요.
그는 포레스티에 부인의 친구인 드 마렐 부인에게도 반하고 맙니다. 그는 사랑스러운 드 마렐 부인을 보며 자신의 정부에 딱 어울릴 만한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생각을 실행해서 드 마렐 부인과의 달콤한 치정 관계를 획득합니다. 그러는 와중에 뒤루아는 신문 기사를 쓰는 일을 꽤 빨리 배워서, 출세의 길을 착착 열어갑니다. 하지만 아직 그의 성에는 차지 않죠. 그를 기자로 추천했던 포레스티에는 폐병이 심해져서 괴로워하다 결국 죽게 됩니다. 뒤루아는 재치 넘치고 아름다워 늘 마음에 두고 있었던 포레스티에 부인에게 구혼하고, 결국 승낙을 얻어내 결혼식을 치릅니다. 포레스티에 부인은 아는 사람도 많고 글 쓰는 재주도 있는 데다 전체적인 판세를 볼 줄 아는 여자여서 뒤루아를 이전보다 더 출세시키는 데 일조합니다.
하지만 현명한 그녀도 뒤루아의 장기의 졸일 뿐이었죠. 뒤루아는 그녀를 설득해서 그녀가 받게 될 엄청난 상속재산의 절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전 포레스티에 부인에게는 벌써 정이 떨어진 상태였죠. 이미 가진 것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뒤루아는, 외모는 평범하지만 한 번도 남편 외의 다른 남자와 애정을 나눈 일이 없다는 왈테르 부인을 유혹합니다. 왈테르 부인은 자신을 다잡으려 하지만 뒤루아의 저항할 수 없는 매력에 넘어가고 말지요. 그러나 왈테르 부인을 손에 넣게 된 시점부터 뒤루아의 마음은 완전히 돌아섭니다. 그리고 왈테르 부인의 딸인 인형 같은 소녀 쉬잔에게 관심을 갖게 되지요.
뒤루아는 전 포레스티에 부인이 바람을 피우던 정황을 잡아내어 간통죄로 이혼하는데요. 이후 왈테르 부인의 피눈물에도 상관없이, 책략을 써서 그녀의 딸인 쉬잔과 결혼하게 됩니다. 쉬잔은 지참금이 엄청납니다. 왈테르 씨가 돈이 엄청 많거든요. 게다가 뒤루아는 신문사에서도 고속 승진을 하죠. 모두 그가 ‘처세에 능한 녀석’이라며 혀를 내두릅니다. 뒤루아는 쉬잔과 결혼하는 과정에서 그간 계속 정부였던 드 마렐 부인과 싸웠지만, 결혼식에서는 아름다운 드 마렐 부인을 보며 다시 몰래 그녀와 만날 생각을 합니다. 드 마렐 부인도 그의 손을 맞잡으며 무언의 긍정을 하죠. 소설은 여기서 끝납니다.
가진 것을 소중히 할 줄 모르는 남자
자, 참 희대의 악당입니다. 몇 명의 여자들을 쥐고 휘두른 건가요? 게다가 그는 여자들을 성공을 위한 발판 또는 자신의 성욕과 정복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죠. 그리고 그들의 여러 가지 원조로 인해 크게 출세하고 돈도 많이 거머쥡니다. 아시다시피 여러 여자들에게는 넘칠 듯한 사랑을 받고요. 도덕적으로 생각할 때, 누구나 그에게 거부감을 느낄 겁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을 겁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그렇지는 않습니다. 뒤루아는 사랑과 성공을 거머쥐는 과정에서 누구보다 행복을 많이 느끼거든요. 본문으로 들어가서 보시면 더욱 복장이 터집니다. 첫 정부, 드 마렐 부인과 마차 안에서 첫 키스를 나눈 후의 서술입니다.
‘드디어 한 여자를, 견실한 남의 아내를 차지했다! 그녀는 사교계의 여자다! 그것도 틀림없는 파리의 사교계 여자다! 게다가 어쩌면 그렇게 손쉽게, 뜻밖에 차지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때까지 그는 그처럼 오랫동안의 염원이었던 여인에게의 접근과 정복은 말할 수 없는 걱정과 끝도 없는 기대와 아첨과 사랑의 말이나 한숨과 선물 등, 교묘한 공격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근심했던 것과는 달리, 은밀히 점찍어 놓은 첫 번째 여자가, 슬쩍 건드려 본 것만으로도 어이없을 만큼 손쉽게 몸을 맡겨 버린 것이다. -<벨아미>, 민음사, 118p
어떤가요, 정말 비양심적인 사람 아닙니까? 그는 사랑을 진실한 무언가로 보지 않습니다. 헌신?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는 사랑을 한낱 장난, 게임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는 타고난 연기자이기도 합니다. 그가 왈테르 부인을 꾀어낼 때를 볼까요.
“실은 사랑을 고백하는 겁니다. 부인께서 겁을 내시지나 않을까 해서 유쾌한 태도로.”
…(중략)…
“어제부터 줄곧 부인 생각만 했기 때문이겠지요.”
…(중략)…
“그렇습니다. 정말로 저는 오래전부터 당신을 미칠 듯이 사모했습니다. 대답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전 미친 사람이니까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 얼마나 당신을 사모하는지 당신이 알아주신다면!” -같은 책, 344~5p
그는 이 단순한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조급하게 굴지 말고 조금씩 밀고 나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 우선 어디든 상대가 좋다는 곳에서 밀회할 약속을 하도록 결심하게 하면 그 뒤는 마음먹은 대로 되리라 생각하며, 한층 더 목소리를 낮추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저……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뵙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거지처럼…… 댁의 문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만약에 내려오지 않으시면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아무튼 뵈러 가겠습니다……. 꼭 가겠습니다…… 내일.” -같은 책, 349p
뭐 이런 놈이 다 있습니까? 모든 여자들의 적이라고 불려도 가히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가 맘을 완전히 돌려서 왈테르 부인이 싫어졌을 때를 보시죠. 그야말로 얼음이 따로 없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지독하게 끈질긴 여자로군!”
그는 불쾌해져서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바로 밖으로 나갔다.
여섯 주 전부터 그는 부인과 관계를 끊으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그 집요한 끈을 놓게 할 수 없었다.
…(중략)…
그는 그러한 발작에 싫증을 느끼고 너무나도 연극적이며 무르익은 이 중년 여인에게 이미 진저리가 나서 슬그머니 물러나 있었다. 만나는 횟수를 줄이면 이 장난도 끝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자 여자가 오히려 정신없이 달라붙어서, 마치 목에 돌을 매달고 물에 뛰어들 듯이 이 사랑에 몸을 던져왔다. -같은 책, 380p
뒤루아의 이러한 차가운 태도를 대하는 왈테르 부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마음이 더 연약해지기 마련인데 말이죠.
또 그의 악행은 끝이 없습니다. 뒤루아는 한때 진한 사랑을 나누었던 정부 드 마렐 부인을 폭행하기까지 합니다. 자신의 미래의 아내를 모욕했다고 말이죠.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면서 말했다.
“쉬잔 얘기는 마! 용서 않을 테니!”
그녀는 더욱 외쳤다.
“손을 댄 거예요, 다 알아요.”
그는 어떤 말이라도 태연하게 들어 넘겼을 것이나, 이 억측에는 화가 났다. 지금 그녀가 그의 앞에서 소리쳐 한 말은 그의 마음에 분노의 전율을 일으켰다. 바로 그의 아내가 될 소녀에 대한 터무니없는 거짓말엔 손바닥이 근질거리는 심한 충동을 느껴서 상대를 후려갈기고 싶었다.
그는 거듭 말했다.
“닥쳐……. 맞지 않으려면……. 닥쳐…….”
그리고 나뭇가지에서 열매를 흔들어 떨어뜨릴 때처럼 그녀를 마구 흔들어댔다.
…(중략)… 그는 그녀에게 달려들어 위에서 짓누르고 마치 남자를 때릴 때처럼 마구 갈겼다. -같은 책, 491-2p
자, 이 정도면 뒤루아의 인성이 어느 정도인지 아시리라 믿습니다. 얻은 사람을 소중히 할 줄 모르고, 새로운 여자만 찾는 남자. 상대의 인격을 짓밟고, 상대에게 지극한 괴로움을 안겨주고도 모른 체하는 남자입니다. 그가 찾은 새로운 여성, 아름다운 인형 같은 쉬잔은 그에게 좀 다른 존재가 될까요? 이토록 그녀의 명예를 위해 싸울 정도이니, 소중하게 대할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그는 천성적으로 아직 갖지 못한 것만을 추구하는 남자이니까요. 실제로 그는 쉬잔과 결혼식을 올릴 때, 그가 상해를 입혔던 드 마렐 부인과 애정 넘치는 인사와 눈빛을 주고받지요.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인사말입니다.
아름다움과 대비되는 죽음
이렇게, 이 작품 대부분이 뒤루아의 아름다움과, 그것으로 인해 그가 얻을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저자 모파상은 끊임없이 죽음과 아름다움을 대비시킵니다. 이 작품 중간중간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한 구절들이 등장합니다. 뒤루아의 친구 포레스티에의 끔찍한 죽음이 그렇고, 중간에 등장한 시인 노르베르 드 바렌의 이야기도 그렇지요.
그렇소, 곧 알게 될 거요. 왠지, 또 계기가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게.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인생의 모습이 한순간에 변하고 마는 거요. 나는 십오 년 전부터 마치 세균이라도 몸속에 기르는 것처럼 죽음이 조금씩, 한 달마다, 한 시간마다, 마치 집이 무너져 가는 것처럼 나를 좀먹어 가는 것을 느껴 왔소. 그리고 지금은 스스로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인상이 변하고 말았소. 내게는 이제 나 자신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소. 서른 살 무렵의 그 쾌활하고 기운차고 힘이 넘치던 나는 이제 아무 데도 없소. 죽음이란 놈은 내 검은 머리를 하얗게 물들이고 말았소만, 그 교묘함과 교활함과 완만함이란! 단단하고 팽팽했던 피부도, 근육도, 치아도, 옛 육체를 전부 빼앗기고 남은 것은 절망에 시달리는 영혼뿐이지만 그것도 곧 뺏기고 말 거요. …(중략)… 요컨대 산다는 것은 죽는 일이오! 오오, 당신도 머지않아 알게 될 거요! 단 십오 분만 골몰히 생각하면 죽음이 보일 거요! -같은 책, 186p
저자는 매혹적인 뒤루아의 젊음이 사라지고 죽음이 조금씩 그의 삶을 잠식할 때, 그가 그 대가를 한꺼번에 치를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소설 <벨아미>가 일단은 뒤루아와 쉬잔의 결혼, 즉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만큼, 뒤루아의 뒤틀린 삶의 방식이 언젠가는 그에게 쓰디쓴 열매를 가져다줄 것임을 저자는 암시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벨아미”가 아름답다고 한들, 그에게 넘어가 버린 여성들도 비난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남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불륜을 저지른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들의 잘못의 대가를 이미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해선 안 될 남자를 사랑하고, 도저히 한 곳에 붙잡아 둘 수 없는 그로 인해 애태우며 얼마나 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을는지 안 봐도 보입니다(물론, 소설 속의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결과를 따져보면 전 포레스티에 부인은 간통죄로 벌을 받았고, 왈테르 부인은 사랑하는 남자에게 딸을 빼앗겼습니다. 한 번 폭력성을 보인 남자는 계속 그러기 마련이니, 드 마렐 부인도 그와의 만남을 지속한들 잃는 게 많을 겁니다. 어찌 보면 철저히 권선징악적인 모파상의 소설입니다. 뒤루아도 반드시 자신의 악행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바라봅니다.
마음의 상처를 손쉽게 입히는 무기
여자들과의 관계에서 뒤루아가 얻은 것은 굉장히 많습니다. 우선 드 마렐 부인과의 정사를 통해 자신감을 획득하고, 그녀의 동정심을 유발해 물질적 지원을 얻었습니다. 전 포레스티에 부인과의 결혼을 통해 출세 전략을 짜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었고, 그녀의 상속재산을 반을 뜯어냈습니다. 신문사 사장의 아내인 왈테르 부인이 주는 정보를 이용해 큰 돈을 벌었습니다. 신문사 사장의 신임을 얻어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쉬잔과 결혼해서 두둑한 지참금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들에게 뭔가 돌려주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생각 뿐입니다.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이용해 얻어낼 것은 모두 얻어내고 쓸모 없어지면 버립니다.
상대를 제압하는 무력만이 파괴적인 것은 아닙니다. 돈이나 권력만이 강한 것도 아닙니다. 아름다움이 잘못된 자의 손에 들어가면 그것만큼 파괴적인 것이 없습니다. 아름다움의 남용과 오용은, 상대 여성 또는 남성에게 몸의 상처보다 치유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남깁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연약해진다고, 제가 앞서도 얘기했었지요. 이미 다들 경험적으로 알고 계시는 사실이기도 할 겁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름다움을 소유한 자는 타인의 사랑을 불러일으키기 쉽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연약하게 만들기 쉬운 경향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 힘을 조금만 조심스레 써준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그들도 나름 힘든 점이 많지 않을까요. 뒤루아처럼 고의적으로 타인을 이용하고 버리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다음 소설은 몹시 추하다가 갑자기 아름다워진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수능에도 나오는 한국의 오랜 고전이죠. <박씨전>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