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떠나신 후 아홉 번의 달이 차고 또 이지러졌다.
지난 주말에 텃밭에 감자를 심었다. 문득 작년 이맘때가 생각났다. 장인어른, 장모님, 그리고 엄마까지 다들 모여서 왁자지껄 떠들고 웃으며 우리 텃밭에 감자를 심었다.
장모님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우리 밭을 위해 애를 많이 쓰셨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장모님의 부재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작년 7월 장례식 후 나는 아내에게 넌지시 장모님의 유품을 다 정리하는 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불가였다.
자기가 장모님 나이가 되면 다 입을 거라며 억지를 부렸다.
그렇게 장모님의 유품은 처가의 장롱 깊숙이 지금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장인어른이 장모님이 지니시던 금붙이를 처리하고자 몇 번 연락을 주셨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어제 퇴근길에 가까운 금방에 모시고 가서 다 처분해 드렸다.
장모님의 손때가 묻은 반지와 목걸이, 팔찌. 귀걸이를 넘기는 자리였는데 장인어른의 표정은 생각보다 담담하셨다.
금방을 나서면서 금붙이를 다 처리하셨는데 기분이 어떠시냐 여쭈니 그냥 홀가분하다 하셨다.
몇 번이나 내게 전화를 하신걸 생각하니 빨리 처분하지 못한 게 계속 맘에 걸리신 건 아니었는지.
그리고 장인어른은 남은 옷가지 등 다른 유품들도 빨리 정리하고 싶다고 강한 의지를 보이셨다.
장례식이 끝나고 한동안 장인어른은 처가에서 보내는 시간을 많이 힘들어하셨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장모님의 흔적과 손때가 묻은 물건들 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불교의 여덟 가지 괴로움(八苦) 중에 애별리고(愛別離苦)가 있을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큰 고통이다.
그 힘든 시간을 오롯이 홀로 감내해야 했을 장인어른의 심정을 생각하니 자식들이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도 든다.
문득 '산 사람은 살아야지'하는 말이 떠 올랐다. 자식들은 누구보다 빨리 장모님과의 이별을 망각해갔지만 정작 평생을 함께한 반려자인 장인어른의 맘은 헤아리지 못했다.
이제는 하나씩 버려야 할 시간이다.'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라 하지 않았던가?
기억과 흔적을 하나씩 버리고 내려놓을 때 남은 자의 슬픔은 새로운 삶의 의지와 욕구로 다시 시나브로 재탄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