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by 석담

소년은 아버지가 싫었다.

싫었다기보다는 무서웠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권위적이고, 보수적이며, 불같이 화를 내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싫었다.

친구들 아빠같이 다정하고 친절하며 자상하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마음속에 항상 가득했다.


소년은 자라면서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고 엄마가 많이 힘든 신혼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소년은 아버지를 더욱 미워했고 절대 아버지 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소년은 공부를 곧잘 했다.

무서운 아버지의 때문이었는지, 아버지에게 '수(秀)'가 가득한 성적표를 보여드리고 칭찬을 받기 위한 방편이었는지 모르지만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소년이 국민학교 5학년 때쯤 아버지는 허리를 다쳐 수술을 했다. 막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소년은 측은한 마음이 처음 들었다.

아버지가 힘든 일을 하시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소년이 중학생이던 어느 날 급체로 정신을 잃은 자신을 업고 병원으로 달리던 사람은 아버지였다.

소년은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지만 고맙다고 말씀드리지는 못했다.


그리고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입학력고사를 보고 아버지에게 서울에 보내 달라고 떼를 썼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생떼를 썼다.

아버지는 아무 대꾸도 없이 서울 가서 공부하라고 허락하셨다.


청년은 아버지의 품에서 벗어나 맘껏 자유를 누리며 좋아했다. 매일 반복되는 음주와 방탕한 생활로 건강이 엉망이 되어 낙향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무 나무람도 하지 않고 아들을 맞이하고 정성껏 돌보았다.


청년이 어른이 되었다.

결혼할 여자를 데리고 아버지에게 왔다. 아버지는 껄껄 웃으시며 네가 좋으면 나도 좋다며 며느리 될 여자를 반겨 주셨다. 그리고 아들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손녀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보다 손녀를 더 보고 싶어 하셨다.

손녀가 오는 날은 아들을 만나는 날이 되었다.


마흔의 아들이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보았다.

슬픔에 가득 찬 아버지의 눈물은 아들도 울게 했다.

그 눈물을 보면서 아들은 다시 살아났다


팔순이 넘은 아버지의 머리는 백발이다.

아들의 머리도 반백이 되어간다.

오늘도 아들은 퇴근길에 아버지에게 한 통의

안부전화를 드린다.


그리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어릴 적 그렇게 미워하고 닮기 싫었던 아버지가 거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