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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방과 각방 사이

by 석담

예고 없이 울리는 새벽 알람에 눈을 떴다.

기계적으로 일어나 여섯 시를 확인하고 알람을 끄고 다시 누웠다. 옆자리가 비었다는 생각에 정신이 말똥말똥하다.

반려견 해피는 옆에서 한밤중이다.


한 달 전, 아니 보름 전만 해도 이런 풍경이 아니었다.

나는 아내의 잠든 모습을 보면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까치발로 주방에 가서 대충 아침을 먹고 조심스럽게 소리를 죽여가며 옷을 챙겨 입고 출근을 했었다.


남들은 오십이 되기 전에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남의 일로 치부하며 귀담아듣지 않았다.

어떤 지인들은 무려 사십 대가 되기 전부터 각방을 쓰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문도 아내를 통해 들었다.


각방을 쓰지 않으면 불편하지 않냐는 친구의 물음에 우리 부부는 같이 자는 게 너무너무 편하고 아내는 내가 없으면 잠을 못 잔다며 호기롭게 떠벌리던 내가 각방의 늪에 빠졌다.

아내는 나의 코골이가 너무 심각하고 딸애 방에서의 수면은 숙면과 꿀잠을 보장한다며 다시 합방의 생활로 돌아올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은 우리 가족의 반려견 해피는 여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와 같은 침대에서 아침을 맞는다.

대견한 놈이다. 취침시간에는 해피가 아내보다 낫다. 나의 몸부림과 코골이를 고스란히 다 받아내며 불평 한마디 없이 내 옆에 껌딱지처럼 딱 붙어서 같이 밤을 보내주는 해피야말로 진정한 나의 솔메이트(?)가 아닐까?


아내가 각방을 쓰게 된 계기는 다른 데 있었다.

큰 딸이 8월에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그때까지 아내가 딸애의 페이스 메이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같이 공부하는 건 물론이고 컨설턴트 역할도 하고 잘 때는 둘이서 한 침대에서 다정하게 수면을 취하고 있다.


딸애의 성공을 위해서 나는 외롭고 고독한 각방 생활을 기꺼이 감수해야만 한다.

어쩌면 아내의 불면과 불편함이 오롯이 내 탓인 것 같아 더는 아내에게 같이 자기를 강요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느끼는 각방의 편리함도 내 사고의 변화를 어느 정도 가져온 게 사실이다.


각방 생활의 편리함과 장점을 내세우며 각방을 예찬하는 예찬론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 속에서 나는 아직도 꼰대처럼 묵묵히 합방을 외치고 있다.

합방이냐 각방이냐는 선택의 문제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이 언제 바뀔는지 나도 장담할 수 없다.


8월이 지나고 아내가 안방으로 돌아올지는 여전히 알 수없다. 그때쯤엔 서로 충분한 각방 생활도 경험해 보았으니 합방하던 시절이 다시 그리워 질지도 모를 일이다.

부디 부부는 서로 살을 맞대고 살아야 한다는 내 믿음이

옳았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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