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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보라카이 신혼여행

by 석담

신혼여행은 당시 인도네시아 발리와 더불어 유명했던 보라카이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해외여행이라고는 출장 목적으로 다녀왔던 홍콩이 유일했던 나는 호기롭게 신혼여행을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떠날 계획을 수립했다.

필리핀 현지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보라카이의 호텔과 국내선 비행기 예약은 미리 해 두었다.

그렇지만 미숙한 외국어 실력과 해외여행 경험에 비추어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서울로 이동하여 김포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이튿날 필리핀 마닐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때는 인천국제공항이 생기기 전이라 국제선도 김포공항에서 출발했었다.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마닐라 공항에서 칼리보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열악한 공항 여건으로 비행기 출발 시각이 계속 지연되었다.

나는 탑승 시각을 알리는 멘트에 모든 감각을 동원하고 집중했지만 짧은 영어 듣기 능력 탓에 매번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멘트가 나오면 카운터로 달려가 비행기 출발하는지 확인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아내는 그 순간에도 화를 내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사건을 안주삼아 자주 나를 놀리곤 한다.


어쨌든 우리는 프로펠러가 달린 작은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칼리보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배를 타고 보라카이 섬으로 향했다. 보라카이에서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트라이시클이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리조트까지 이동했다. 트라이시클 기사는 현지인으로 약간은 카리스마 있는 나쁜 남자의 인상이었다. 트라이시클을 타고 20분쯤 달렸는데 아무 말도 없이 계속 산속으로만 들어가니 아내와 나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거 필리핀 반군에게 납치된 거 아냐"

"우리 이제 어떡해요? 흑흑."

아내와 나는 잔뜩 긴장하여 걱정하고 있었는데 해적을 닮은 그 오토바이 기사는 한참만에 나무가 우거진 깊은 숲 속의 리조트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우리는 비로소 반군에게서 석방(?)된 기쁨을 누렸다.


우리는 보라카이에서 보트를 타고 낚시도 하고, 나이트클럽도 가고,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노래방(사회자가 있고 희망자들 한 명씩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노래하는 방식)도 가보았다.

나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노래방 무대에서 팝송 한곡을 불러 현지인들의 뜨거운 축하를 받고 인터뷰까지 하는 행운을 누렸다.


20년도 더 된 신혼여행의 기억이지만 아내와 나는 가끔씩 추억의 앨범을 펼쳐 놓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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