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터울은 궁합이 좋다".
그것은 내가 아내와 선을 보고 결혼을 약속했을 때 장모님이 해주신 덕담이었다.
관습적으로 남녀의 네 살 터울은 너무 궁합이 좋아 맞선도 안 보고 혼례를 치르기도 한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이 전해져 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건 무슨 까닭인가?
그 좋던 네 살 터울이 툭하면 서로 날을 세우고 치고받고 싸우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 돌아가신 장모님께 여쭤 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세 살 터울인 까닭에 사흘이 멀다 하고 싸우는 것일까? 우리 부부를 보면 그것도 맞지 않은 논리인 듯하다. 그래서 생각난 것은 부부싸움은 유전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논리이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금슬이 좋으셨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싸움에 이력이 날 지경이다. 그 자식들인 나와 아내는 싸울 수밖에 없는 교집합의 결과물인 셈이다.
결국 싸움닭인 나의 등장으로 우리 부부 또한 부부 싸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원인은 도출한 셈이니 이제 그 지긋지긋한 부부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싸움닭인 나와 아내의 분리가 제일 간단한 해법이지만 현실적으로 해결 가능한 방법이 아니다.
다음으로 실현 가능한 방법은 싸움닭인 내가 병아리가 되거나 병든 닭이 되는 방법이 있다.
이미 나잇살을 먹을 대로 먹은 터라 병아리가 되기는 어렵고 병든 닭이 되는 것도 아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이다.
이제 마지막 해결책이 남아 있다.
싸움닭을 싸움의 진원지에서 격리시키는 방법이다.
가급적 아내와 비대면 접촉을 강화하고 싸움의 조짐이 있을 때는 스스로 자가 격리에 들어가던지 그에 불응하면 가차 없이 강제 격리 조치를 시행하는 방법이다.
아마도 마지막 방법이 부부 싸움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아닐까 여겨진다.
이 방법에 아내도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아내는 부부는 살을 비비대고 살아야 한다는 주의니까.
어쨌든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