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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어려워

by 석담

간만의 불금이다.

주 52시간이 시작된 지 오래이지만 체감할 수 없다.

퇴근 후 집에 들러 아내 얼굴 잠깐 보고 나만의 공간 농막으로 향한다.


퇴근길에 사 온 와인이랑 짜글이 밀 키트를 끓여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마누라 눈치 보며 장만한 오디오로 음악을 튼다. 내가 엄선(?)해서 고른 팝송과 가요를 직접 다운로드하여 USB에 저장한 노래들이다.


시골이라 음악소리와 개구리 소리, 풀벌레 소리가 섞여서 오히려 아름다은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가끔 지나가는 길고양이의 뒤태도 반갑다.

멀리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이 아직 세상 속에 있음을 알려준다.


요즘은 아내와 싸우지 않는다.

아니, 싸움을 피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와 한 이불을 덮고 잔다.


때로는 아내가 나와 생각이, 그리고 가치관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날 아내와 부단히 싸우며 화해하며 살았다. 그래도 우리는 한 번도 이혼하자는 말을 입밖에 내뱉은 적은 없다.


이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생각의 자유로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게 백년회로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내는 맞벌이 부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여전히 가사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나는 여전히 백 점짜리 신랑이 되지 못한다.


아내는 집안일에 최선을 다하고 애들을 진심을 다해 돌보고 있다. 그녀는 우리 집안 존속의 중요한 축이다.

나는 한 번도 아내 없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냥 같이 사니까, 부부니까 사랑이라고 치부했다.

아내와 한 번도 진지한 사랑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결혼기념일에는 고급 레스토랑의 식사로, 그녀의 생일에는 금반지 하나로 퉁쳤다.

그게 사랑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그녀가 쉴 수 있도록 분리수거를 대신하는 것이 사랑의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내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지만 한 번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많이 고맙지만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항상 내 곁에 그리고 애들의 엄마로 우리 곁에 항상 함께 할 거라고 믿었다.


이제 인생의 황혼 무렵이 가까워 온다.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황혼이 지기 전에 내가 할 일이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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