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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한 곳을 보고 같이 걸어간다

by 석담

아내가 우체국에 근무한 지 햇수로 30년이 되었다.

어제 30년 근속으로 받은 장관 표창장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린 걸 보고 정말 오랫동안 열심히 다녔구나 하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시작한 우체국 공무원 생활을 30년째 해오는 걸 보면 그래도 자기 일에 대한 고집과 소신이 뚜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그만두거나 명예퇴직이 유행처럼 번지는 세태 속에서도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온 아내의 근면함과 성실함에 큰 박수를 보낸다.


우리 부부는 결혼 초부터 맞벌이 부부였고 남들처럼 가사와 육아 문제로 애들이 클 때까지 사랑과 전쟁을 반복했다.

그래도 부부의 연을 끊지 않고 25년을 살았다.

작년이 결혼 25년이 되는 해였다. 결혼 25년이 되는 해의 결혼기념일을 은혼식이라 한단 했다.

4월 27일이 결혼기념일이다.

올해는 은혼식을 대신해 아내와 해외여행을 다녀오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동안 두 딸들을 포함한 가족여행은 여러 번 다녀왔지만 아내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신혼여행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이번에는 패키지여행 대신에 자유여행을 선택했다.

보너스 마일리지로 내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아내는 항공료를 지불하고 비행기표를 샀다. 인터넷으로 4성급의 가성비 좋고 조식이 포함된 호텔도 예약했다.

타이베이에서 이용할 몇 개의 투어 이용권과 식사권도 이미 예약해 두었다.


회사에는 28일 하루 연차를 내고 5월 1일까지 3박 4일의 여행 스케줄을 짰다.

짰다가 수정하고 또 수정하여 대략의 타이베이 3박 4일 여행 스케줄을 마무리했다.

내일 퇴근 후 KTX를 타고 우리 부부는 서울로 출발할 예정이다. 서울의 처형 집에서 하루 묵은 후 모레 아침 대만으로 출발할 것이다.

아내는 지금 여행 짐을 싸느라 여념이 없다.


문득 신혼여행 갔던 보라카이의 해변이 떠올랐다.

그때도 회사 거래처의 도움을 받아 자유여행으로 필리핀으로 떠났었다.

마닐라 공항 카운터에서 나오는 출발이 지연된다는 안내방송을 알아듣지 못해 몇 번이나 항공사 카운터를 방문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난다.

보라카이 해변에서 툭툭를 타고 산속의 리조트로 가는 내내 우리 부부는 필리핀 반군에 납치된 거 아니냐며 불안해했던 웃지 못할 기억도 있다.


나는 퇴직이 몇 년 남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퇴직하면 자기도 같이 퇴직할 거라 엄포를 놓았다. 왜 자기만 고생해야 하냐며 바른 소리를 한다.

우리는 퇴직 후 귀촌을 생각 중이다.

현재의 주말 농장이 있는 청도의 근교로 이사를 생각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아내에게 다정하고 살가운 남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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