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치과에 들러 정기검진을 받은 후 조금 늦게 집에 갔더니 마누라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평소에 하던 대로 나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밥 좀 차리라"
"밥은 각자 알아서 차리 묵는거 아니가?"
예상 밖으로 훅 치고 들어온다.
그리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꽝 닫고는 나와의 사이에 커다란 담을 쌓고 말았다.
늦은 저녁을 먹으며 어떤 연유로 아내가 그토록 화가 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당연히 지난 며칠간의 내 소행이 소환되었다. 며칠간 저녁 식사 후, 이른 저녁 시간에, 아내가 설거지나 빨래에 여념이 없는 시간에 나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침대 위에 드러눕곤 했다.
게다가 바깥에서 나는 소음이 시끄럽다고 방문까지 닫는 만행을 저질렀다.
혼자 일찍 침대에 눕는 것도 꼴불견인데 방문까지 철벽으로 막아 버렸으니 아내의 그 심정이야 오죽했으랴.
저녁을 먹으면서 닫힌 방문이 답답해 아내에게 왜 문을 닫았냐고 따지니 역시 내가 생각했던 그 예상 답변이 화살이 되어 줄줄이 쏟아졌다.
저녁 식사 후 개수대에 쌓여 있는 그릇들을 설거지하면서 아내가 느꼈을 상실감과 배신감을 생각했다.
그렇게 아내를 떠올리니 코끝이 뜨거워졌다.
아내를 만난 지 이십 년 하고 사 년이 흘렀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나는 도무지 달라진 게 없었다.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즐겁고 기쁜 순간들과 슬픈 순간들이 오버랩되어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두 딸을 얻은 행복한 시간과 새 집을 구해 행복한 순간이 있었고 내가 병마와 싸운 힘든 시간, 그리고 장모님을 떠나보낸 슬픈 시간도 있었다.
항상 그 중심에는 아내가 있었고 그 옆에 내가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노후를 보낼 농막 이야기로 한껏 들뜬 아내를 보며 행복한 인생의 뒤안길을 그려 보기도 했었다.
아내는 머리가 좋은 여자다.
항상 나의 부족한 이해력과 공감능력을 지적한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공직자의 길로 접어들어 삼십 년 넘게 일하고 있으니 그 성실함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아내가 직장에서 우수한 실적과 성과로 표창도 자주 받아 오는 걸 보면 일도 곧잘 하는 걸로 보인다.
내 머리가 나쁘다고 자주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 그녀는 머리가 좋은 게 틀림없다.
아내는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
너무 자기 주관이 뚜렷해 결혼생활 내내 나와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다. 좋게 말하면 주관이고 다른 말로는 고집이다.
내가 고집을 꺾자고 나서면 우리 집에는 전쟁이 시작된다.
아내의 고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아마도 그건 그녀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 고집이 꺾이는 날은 더 이상 예전의 그녀가 아닐 것이다.
아내의 고집을 꺾을 수 있는 분은 장인어른이 유일하다. 부전자전이라 그런가 보다.
아내는 자식 바라기다.
딸 둘을 케어하기 위해 전심전력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지극 정성이 아니겠냐마는 아내는 특히 딸들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다. 절대 딸들을 방목해 키우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우리 집 서열은 딸들, 마누라, 해피(반려견), 그리고 머슴(나) 순이다.
아내의 두 딸에 대한 정성과 노력은 진정 높이 평가해 주고 싶다. 나는 딸들의 공부습관에 대해 좀 관대한 편이지만
아내는 한치의 용납도 없다. 아이들의 보랏빛 미래를 위한 아내의 선견지명이 딸들의 학교생활을 빛나게 했다.
아내는 효녀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후 아내는 장인어른 걱정으로 노심초사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안부전화를 드리고 삼일에 한 번꼴로 친정에 들러 반찬을 해 놓고 온다.
장인어른의 일과 생활을 여쭤보고 자기의 생각도 기탄없이 말씀드려 당신이 무료한 노후를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제안해 드린다.
본가에 가서 부모님께 살갑게 대해 드리고 챙겨 드리는 아내가 고맙다.
아내는 등산가이다.
대학교 때 산악반에 잠시 몸담은 그녀는 진정 여성 산악인이다. 해마다 설악산, 지리산을 무박 종주로 다녀오곤 했다. 나도 아내의 영향을 받아 매주 산에 가는 습관이 생겼다. 비록 동네 앞산이기는 하지만.
부부가 같은 습관 하나쯤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아직 내 무릎이 멀쩡하고 같이 산행할 아내가 있으니 내 노후는 걱정 없다.
2004년 봄날 병원에 누워 생사를 오가던 내게 아내는 반드시 꼭 다시 살아 돌아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나는 예약 문자로 그녀가 고맙고 사랑한다고 남겼다. 수술 중에 내게서 온 문자를 확인하고 그녀는 폭풍 눈물을 쏟았단다.
비위가 약한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병상에서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나의 대소변을 다 받아내며 나의 생환을 기원했다.
늙어서 등 긁어 주고 이불 당겨 덮어 줄 아내를 너무 홀대했다. 평생을 함께할 그녀를 좀 아껴야겠다.
내 편이면서 딸들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한 아내를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기로 했다. 나는 오늘 기꺼이 팔불출이 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