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의 화해 무드는 딱 설날 아침까지였다.
몇 주전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다녀온 온천욕 이후로 부모님의 사이도 원만해 보였고 재작년 입주 이후로 한 번도 정식으로 방문하지 않았던 아들집에서 기꺼이 설 명절도 보내겠다고 흔쾌히 수락했을 때만 했어도 분위기가 좋았다.
설날 아침 우리 부부는 구지에 있는 사촌형 집에 차례를 지내러 갔다. 그곳에서 동생부부와 사촌 동생과 조카들이 함께 차례를 지냈다. 그리고 부모님께 새배를 하기 위해 우리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부모님께 새배를 하고 덕담을 듣고 여느 집 설날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동생이 다음 설에는 아버지도 같이 사촌형집에 한번 가자고 운을 떼었다. 아버지는 동생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다리가 아파서 못 간다"하시며 일언지하에 거절하셨다.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우리가 자동차로 모시고 가서 차에서 내리면 바로 엘리베이터인데 걸을 일도 별로 없는데 왜 안 가신다는 것인가?
부산에서 청도로 이사를 한 지 1년도 훨씬 지났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부산의 한 은행계좌에 약간의 예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은행 방문을 핑계로 일 년에 서너 번 부산을 다녀오신다. 관절염으로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걱정해 어머니는 항상 원하지 않는 동행을 하신다.
며칠 전 본가에 있는 TV가 고장이 나서 동생과 의논해서 새 걸로 하나 설치 해드리기로 하고 인터넷 쇼핑몰에 주문을 했다. 그리고 배송 설치 날짜가 설 연휴 다음날인 25일로 정해졌다.
아버지는 그날이 부산 가는 날 이라며 배송설치를 미루자고 우기셨다. 나는 부산에 왜 가시는지 어머니께 여쭤보고 나서야 아버지의 부산행의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다리 아픈데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부산에는 매달 어떻게 가세요?"
이 한마디를 안 했어야 했었다. 아버지의 표정이 붉으락 푸르락 바뀌었다. 그리고 체념한 듯이 집에 가시겠다며 다짜고짜 옷을 입으셨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내고 막말을 하셨다.
나는 분위기가 급변했음을 직감했다. 집안은 냉각기류로 바뀌었다.
어머니는 못내 아쉬운 발걸음으로 아버지를 따라서 나가셨다. 동생이 부모님을 댁까지 모셔다 드렸다.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만 하고 나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막말에 화가 났다.
합리적인 이유도 설명도 없는 아버지의 분노가 이해되지 않는다.
무엇이 아버지를 저렇게 분노하게 했는지,
내가 아버지를 청도로 모시고 온 행동에 후회가 몰려왔다.
아버지는 진정 부산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