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전혀 특별하지 않다

by 석담

퇴직을 몇 년 앞두고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 들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는 것을 느끼는 순간부터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나 반추하는 행동이 훨씬 잦아졌다.

그것이 의도적이던 무의식적이든 간에 남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에 대한 위기감의 반증이리라.


그리고 오늘 내가 얻은 결론은 난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그동안 나는 특별해지고자, 아니 특별한 삶을 구하기 위해 부단히 내 앞에 놓인 문을 두드렸지만 그곳에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항상 그대로의 달라지지 않은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 인생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은 대학 때였다.

80년대 중반의 대학 생활은 내게 너무나 잔인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언제나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곤 한다. 모든 것이 달라져버린 지금의 나를 보면서 돌아갈 수 없는 대학시절을 그리워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민태원 소설가의 청춘예찬을 국어 교과서에서 만나고 엄청 큰 감흥을 받았다.

청춘예찬의 말미에 작가는 " 시들어 가는 노년에게서 구하지 못할 바"가 청춘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 시절 왜 내게만 그 엄청난 시련이 찾아왔는지,

왜 내 인생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는지 그분께 묻고 싶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그분은 빙그레 미소 지을 뿐 아무 대답이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도출해 낸 답은 나의 노력 부족이었다.

나의 나태함과 무기력으로 점철된 대학생활의 종착역은 이미 예고된 블루 앤딩이었다.


며칠 전 아내는 내게 "우리도 언제 대박 한번 내야지"하며 나의 동의를 구하는 듯한 할리우드 액션(?)을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대박은 무슨 소박도 힘들다. 쪽박 안차고 사는 거에 만족하면 안 되는 건가?'하고 짐짓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다.

혹자는 나를 자신감이 결여된 찌질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두 딸이 대학에 들어가자 나는 나의 인생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을 두 딸들이 대신 이루어 주었으면 하는 엉뚱한 기대를 가지는 버릇이 생겼다.

아마도 그녀들이 이룬 성취를 대리 만족을 통해 내 성과인양 과대 포장하려는 심리가 아닌가 싶다.


고 신해철 가수의 "나에게 쓰는 편지"를 중얼거려본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계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 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누군가는 예스라고 답할 것이고 누구는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노"라고 말할 수밖에.


나는 지금 불 꺼진 아라비아 시장에 서 있는 소년의 심정이 되어 오늘을 보낸다.

"그 어둠 속을 응시하면서 나는 허영심에 내몰리고 조롱당한 짐승 같은 내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나의 눈은 고뇌와 분노로 이글거렸다.(제임스 조이스의 애러비 마지막 부분을 창비사에서 번역)

그리고 내일 다시 여기를 찾으리라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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