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으로

by 석담

오래전에 몰락한 대기업 총수가 펴낸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은 오래전 초보 해외영업사원이었던 내게 마음의 지침서와 같았다.


가슴 설레 던 나의 첫 해외 출장은 1996년 5월 말쯤 찾아왔다. 중소기업 해외영업부 신입이었던 나는 해외 출장이라는 행운을 거머쥐고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가 첫 발을 디딘 나라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였다.

무역담당 과장과 같이 떠나는 출장길에 초행인 나는 외국여행에 실수라도 할까 걱정되어 과장의 닮음 꼴처럼 행동했다.


김포공항에서 타이 항공을 타고 갔는데 타이 항공은 대한항공에 비해 항공료도 쌌고 비행기 뒤쪽 좌석 일부가 흡연석으로 운영되어 그 당시 인기가 높았다.


쿠알라룸프르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화장실을 처음 이용해 보고 나서야 외국사람은 우리와는 문화가 좀 다르다는 걸 실감했다. 변기에 세정용 호스가 설치되어 있고 화장지가 없는 화장실이었다. 동행한 과장은 말레시아에서는 왼손은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손이라 애들 머리 쓰다듬는 행동을 하면 안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여 현지 음식이 그다지 맞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잘 적응해 나갔다. 동행했던 과장이 빵과 과일, 그리고 삶은 계란을 먹으면서 버티는 걸 보면서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2주 남짓 계속된 전시회 일정을 마치고 잠시 시간을 내서 관광도 하고 귀국했다.


그렇게 시작된 업무상 해외출장이 1년에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세 번까지 객지에 나가는 바람에 신혼이었던 아내에게는 큰 고역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된 나의 해외출장여행은 동남아 각국과 인도, 두바이, 이집트, 이탈리아, 중국, 미국까지 통틀어서 나라를 20개국 정도는 방문했던 것 같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 이전의 선조들께 해외는 우물 밖 세상이었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네 밖으로 나갈 일이 좀처럼 없었다.

장날에나 10여 리 떨어진 면소재지에 갔을까?

혹시라도 일가친척의 결혼식이 있으면 서울로, 부산으로 나들이를 떠나는 게 고작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먹고살만하니 여행 다녀 오시라 등 떠밀어도 허리며, 다리며 어느 곳 하나 성한 데가 없는 부모님을 뵈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고 너도 나도 해외로 떠나기 시작했다.

한동안 코로나로 유보된 해외여행이 격리 및 검사 해제 조치로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며칠 전 큰 애가 2주 일정으로 미국으로 자유여행을 떠났다.

여행경비를 스스로 아르바이트해서 조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역시 MZ세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앞서 작은 애는 2020년에 학교에서 단체로 미국을 다녀왔다.

나는 2009년에 뉴욕을 다녀왔으니 결과적으로 우리 세 부녀는 다른 시기에 뉴욕의 동일한 장소에서 인증사진을 찍은 셈이다.


아내는 자기만 미국을 가지 못했다며 툴툴거린다.

퇴직하면 함께 가자고 아내를 달랬다.

이제 우리는 세계 속으로 나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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