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가을이 깊어 갑니다

by 석담

작년 뜨거웠던 그 여름 장모님이 떠나시고 한동안 아내와 처형의 카톡 프로필은 남진원 시인의 '어머니'라는 동시였다.


"사랑스런 것은

모두 모아

책가방에 싸 주시고


기쁨은 모두 모아

도시락에

넣어 주신다


그래도 어머니는

허전하신가 봐


뒷모습을 지켜보시는 그 마음

나도 알지"


아낌없이 모든 것을 퍼주시는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시구에 절로 눈가가 붉어진다.

가을이 깊어가는 지난 주말 청도의 텃밭에서 어머니와 나는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어머니는 결구된 배추를 끈으로 묶으시고 노랗게 익은 메주콩을 수확하셨다. 어머니의 일하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스마트 폰만 만지작 거리던 나도 장대를 집어 들고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땄다.

감을 찾느라 한참을 감나무 꼭대기를 쳐다보고 있으니 현기증이 나고 뒷목이 아팠다.

잠시만 움직여도 이렇게 힘든 농사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불평 한마디 없이 하시는 어머니는 강철보다 강한 것이 틀림없다.


콩을 똑똑 따시며 어머니는 지난여름 콩밭에서 잡초를 속아내다 구렁이를 만난 이야기를 하셨다.

어머니가 구렁이를 보고 너무 놀라 다음부터는 꼭 장화를 신으셨다는 이야기에 나는 깔깔 웃고 말았다.

어머니도 같이 웃으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난주에 아버지랑 부산 다녀온 이야기, 미장원에서 머리 파마한 이야기, 시장에서 산 고등어가 별로 싱싱하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시시콜콜한 그간의 안부를 내게 전해 주셨다.


어머니는 오랜 직장 생활로 난청이 일찍 찾아왔다.

작업 반장으로 일하시며 프레스 기계의 소음에 너무 장시간 노출된 탓에 얻은 직업병인 셈이다.

그래서 어머니와의 대화는 소음의 연속이다.

고함치듯 이야기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알아듣지 못하신다.

그래도 어머니는 나와의 대화를 즐기신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있으면 어머니는 내 곁에 앉아 '이거 먹어봐라', '저 반찬은 왜 안 먹냐?' 하시며 코치를 하시고, '옆집에는 누가 왔더라', '누구 집에는 무슨 일이 있었다'하시며 동네 소식까지 전해 주신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가 챙겨주신 선물 보따리를 열어 보았다.

'들기름, 애호박, 콩잎 짠지, 고추장, 볶은 결명자'까지 정성 들여 포장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니 사랑스러운 것과 기쁨을 모아 주고도 허전함을 느끼는 시인의 "어머니"는 나의 어머니와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