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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그 소중한 기억들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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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석담
Nov 02. 2021
어머니의 자필서명
이름 석자를 쓰는 당신의 손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어렵사리
힘들게
다 쓰고 나서야 휴 하고 긴 한숨을
내뱉
었다.
"
글자가
제대로 안되네"
"괜찮습니다. 잘
쓰셨구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겸연쩍어하시는 어머니의 등을 다독이며 안심시킬 요량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삐뚤빼뚤 초등학생 저학년이 쓴 글씨 같은 어머니의 이름 석자가
주택매매계약서의 매수자 서명 난에
쓰여 있었다.
그제야
나는 엄마가 글을 모르는 문맹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 드리지 못한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지난주에 본가에
전화했을
때 매매계약서는 자필로 써야 한다고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한사코 '니가 대신
쓰면
안 되냐'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자필 서명하시기를
꺼려하시던
게 떠올랐
다.
청도 주택을 구입하면서 그 집은 어머니 명의로 해드리기로 아버지와 이미 의논이 끝난
후
였다.
어머니는 경북 의성에서도 한참
구석으로
들어가야
있는
촌 동네에서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들만
넷을 둔
농부의 딸로 자란 어머니는 보수적인 외할아버지와
지독한
가난 탓에 교육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큰외삼촌은 대학까지
졸업했
지만 어머니는
요즘에야 의무교육인 그
흔한 기초교육의 수혜도 받지 못했다.
나는 어릴 적 어머니의
문맹
을 부끄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
다른 엄마들은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은 물론 대학까지 나온 친구 엄마들도 있는데 우리 엄마는 왜 학교도 못 나온 거야'라며 내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심지어 학교에서 가끔씩 하는 가정교육환경을 조사하는 설문에 어머니의 학력을 중학교라고 내 마음대로 적었다.
아버지는 한술 더 떠서 '
너거 엄마는 글자 모른데이' 하시며 장난 삼아 엄마를 놀리곤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그 한마디는 엄마에게 얼마나 큰 생채기를 남겼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일찍 한글을 가르쳐 드리지 못한 내가 너무 죄스러웠다.
당신의
이름을 적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집에서 몇 번씩이고
반복해서
이름
쓰기를
연습
하셨을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미어
졌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많이
늦었지만
어머니께
한글을 가르쳐 드려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해 본다.
keyword
어머니
서명
글자
Brunch Book
가족, 그 소중한 기억들
01
어머니의 손가락
02
찐빵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03
어머니의 자필서명
04
아버지의 바다
05
부부로 산다는 건
가족, 그 소중한 기억들
석담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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