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든셋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너무 짠하다 못해 안타깝다. 하얗게 센 머리, 얼굴 깊이 파인 주름, 둔한 몸놀림, 그리고 불편한 무릎관절까지 영락없는 노인네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고집 센 그 성격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어릴 적 아버지는 무서움, 두려움의 존재였다.
다정하게 말을 붙이거나 살갑게 스킨십을 해주는 일은 절대 없는 무뚝뚝한 아버지로 기억한다.
그저 묵묵히 집안을 지켜나가고 성실함과 검소함으로 똘똘 뭉친, 그리고 법이 없으면 절대 보호받지 못할 것 같은 소시민이었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으로 나는 어머니께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기대하며 컸었나 보다.
머리가 굵어지고 대학에 들어갈 무렵부터는 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내가 보살펴 드리고 챙겨 드려야 하는 약한 가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세월은 흘러 젊고 당당했던 아버지는 온 데 간데없고 나약하고 마음 여린 백발의 노인이 되어버린 아버지는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으로 기억된다.
이웃에 사는 6촌 형이 찐빵을 사서 우리 집에 왔다.
먹거리가 귀했던 그 시절의 내게 찐빵은 더없이 맛있는 군것질거리였다.
쉬지 않고 두 개를 단숨에 먹었다.
그리고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아버지의 널따란 등에 업혀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우리 집은 영도 산비탈의 산복도로 근처에 있었다.
아버지 등에 업혀 큰 도로까지 내려가 택시를 타고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의사가 급체라고 이야기하는 걸 얼핏 들은 것 같다. 관장을 하고 오랫동안 화장실에 머무르다 병원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야 내 발에 슬리퍼가 한쪽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가 나를 들쳐 없고 달리느라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나간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신고 있던 슬리퍼 한 짝을 벗어 내게 내밀며 신으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며 신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때는 그런 모습의 내가 전혀 부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차창 밖의 먼 곳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계셨다.
나도 아버지가 보시는 곳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버지께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자꾸 마른 입술에 침만 바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