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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Oct 25. 2021

어머니의 손가락

코로나 방역 거리두기로 부산에 있는 본가에 가는 걸 미루다  벼르고 별러서 지난 주말에 혼자 부산 영도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차려 주신 맛있는 집밥을 먹으며  부모님의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의 정성 어린 저녁밥을 허겁지겁 먹다가 고등어자반의 뼈를 발라 주시는 어머니의 손을 보고 문득,  40년 전의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순간 목이 메었다.


1980년대 초우리 집은 오랜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철공소에서 막노동을 하셨고 어머니도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이쑤시개 장식 만들기부터 인형 수선, 시계줄 조립 등 동네에서 돈 되는 부업은 가리지 않고  하셨다.

그것도 모자라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때에 마침내 집에서 가까운 중소기업에 취업까지 하시며 직업 전선으로 뛰어드셨다.


그 덕분에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여동생과 남동생까지, 우리 삼 남매는 일찍 철이 들었다.

어머니는 손재주가 좋았다. 손놀림이 빨라 사출과 조립을 주로 하는 그 회사에서 인정받는 여성 인력이었다.


중학교 때 집 근처 근거리에 있던 어머니의 회사는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지하철 한 시간 거리의 동래구로, 대학 진학할 무렵에는 차를 세 번 갈아 타야 출근할 수 있는 거리의 양산이라는 곳으로 이사해 버렸다.

어머니는 그 먼 거리를 새벽밥을 해 가며 출퇴근하셔서 40년을   근속하시고 몇  년 전에 퇴직하셨다.

당신은 재직 중에 모범사원으로 시장표창을 비롯해서 많은 상을 받으셨고,  회사가 어려워 나이 든 직원들이 많이 그만뒀지만 끝까지 쫓겨나지 않고 2시간 거리의 양산으로 출근하셨다.

 창업주 회장이 돌아가시고 그 아들이  기업을 승계하여 이어갈 무렵까지 어머니는 청소일을 해주며 몇  더 근무하다 그만두셨다.


"너희  엄마는 돈 몇 푼 벌려고 새벽같이 나가서 일하다 손가락까지 잘리고...."

입으로 정신없이 밥 숟가락을 쑤셔 넣던 내게 아버지가 뜬금없이 한마디 툭 던지고는 밖으로 나가신다.


"아 한테 그런 소리뭐할라꼬 하는교?

별소릴 다한다"

엄마는 어쩔 줄 몰라하시며 아버지의 말씀을 에둘러 마무리 지으려 하셨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늦은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아버지는 내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주셨다.

아버지가 나가시고 어머니가 내 등을 다독이며,

 "나는 괜찮으니 걱정 말고 밥 많이 먹어라"

하시는 말씀이 내 귓가에서 아득하게 들렸지만 더 이상 밥은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붕대에 싸인 어머니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 첫마디가 반쯤  잘려 나가고 없는 것을.

그리고 내 눈앞뿌옇게 흐려졌다.

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쉼 없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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