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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Nov 02. 2021

어머니의 자필서명

이름  석자를 쓰는 당신의 손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어렵사리 힘들게 다 쓰고 나서야 휴 하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글자가 제대로 안되네"

"괜찮습니다. 잘 쓰셨구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겸연쩍어하시는 어머니의 등을 다독이며  안심시킬 요량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삐뚤빼뚤 초등학생 저학년이 쓴 글씨 같은 어머니의 이름 석자가 주택매매계약서의  매수자 서명 난에 쓰여 있었다.

그제야 나는 엄마가 글을 모르는 문맹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쳐 드리지 못한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지난주에 본가에 전화했을 때  매매계약서는 자필로 써야 한다고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한사코 '니가 대신 쓰면 안 되냐'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자필 서명하시기를 꺼려하시던 게 떠올랐다.

청도 주택을 구입하면서 그 집은 어머니 명의로 해드리기로 아버지와 이미 의논이 끝난 였다.


어머니는 경북 의성에서도 한참 구석으로 들어가야 있는  촌 동네에서 6남매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들만 넷을 둔 농부의 딸로 자란 어머니는 보수적인  외할아버지와 지독한 가난 탓에 교육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큰외삼촌은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어머니는 요즘에야 의무교육인 그 흔한 기초교육의 수혜도 받지 못했다.


나는 어릴 적 어머니의 문맹을 부끄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엄마들은 한글을 읽고 쓰는 것은 물론 대학까지 나온 친구 엄마들도 있는데 우리 엄마는 왜 학교도 못 나온 거야'라며 내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심지어 학교에서 가끔씩 하는 가정교육환경을 조사하는 설문에 어머니의 학력을 중학교라고 내 마음대로 적었다.


아버지는 한술 더 떠서 '너거 엄마는 글자  모른데이' 하시며 장난 삼아 엄마를 놀리곤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그 한마디는 엄마에게 얼마나 큰 생채기를 남겼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일찍 한글을 가르쳐 드리지 못한 내가 너무 죄스러웠다.


당신의 이름을 적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집에서 몇 번씩이고 반복해서 이름 쓰기를 연습하셨을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많이 늦었지만 어머니께 한글을 가르쳐 드려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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