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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Nov 06. 2021

아버지의 바다

"나는 여서 그냥 있다가 죽으만 안 되겠나?"

아버지는 결국 눈물을 보이셨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께 이사하자고 권유를 했던 나의 선택옳았는지 자신이 없다. 두 분을 모두 만족시켜 드릴 방법은 없었는지... 자책감이 들었다.


'꼰대'

나이 오십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한 번도 그 말을 입밖에 낸 적은 없었다. 아마 남들에게는 착한 아들로 비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불협화음을 내고 항상 당신의 주장만 옳다고 생각하시는 아버지의 일방통행식 태도가 지겨워질 무렵부터였을까? 언제부터인가 내 뇌리 속에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꼰대로 각인되어 가고 있었다.


이삿날 아침.

옮기느라 모두 바쁘게 움직이는 공간 속에서 아버지는 그렇게 멍하니 부산 앞바다만 보고 계셨다.

50년 넘게 살아오신 고향  같은 곳을 떠나자니 그 서러움과 허탈감에 옛 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시는 듯했다.

몇 번의 전세살이 끝에 마침내 마련한 아버지의 첫 집, 자가 주택이었다. 당신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부산 집은 아버지에게는 마지막 보루였던가?


아버지의 퇴행성 관절염이 심해진  건 칠순이 지나고 얼마지 않아서였다. 병원에서는 유전적 질환일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아버지가 젊은 시절 힘든 노동을 많이 하셔서 생긴 직업병이라고 혼자 단정해 버렸다.

 대학 병원에서 간단한 수술 후 좀 나아진 듯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퇴행성 관절염은 더욱 악화되었다.

우리 형제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인공관절 수술을 권해 드렸지만 끝끝내 거절하시고 여태껏 지내셨다.


청도로의 이사를 결정한 동기는 어머니의 소일거리를 찾아 드리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무릎관절에 부담을 좀 덜어 드리고자 함이었다.

산복도로 위의 산비탈을 뒤뚱뒤뚱 오르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삿짐을 모두 들어낸 텅 빈 거실에서 부산 앞바다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바다만 응시하며 미동도 없이 앉아 계셨다.

마치 그 바다를 더 오래 기억하시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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